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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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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 제3부 제도・기관・행정 (第3部 制度・機関・行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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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2: | Introduction |
Title | 제3부 제도・기관・행정 |
Japanese Title | 第3部 制度・機関・行政 |
Text | 제3부에서는 신도의 제도・기관・행정에 관련된 용어를 설명한다. 그 대상은 주로 국가적 기반을 가지는 진기(神祇, 天神과 地神)제도와 그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여러 제도이다. 진기제도의 시대적 변천의 특징을 아주 간략하게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즉, 고대에 일단 전국적인 규모로 정비되었지만, 중세 이후 점차 변질되고 쇠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근대에 다시 정비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해체되어 다른 종교와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되었다. 고대 진기제도의 확립은 율령제도의 정비와 그 흐름을 같이했다고 할 수 있다. 엔기시키진묘쵸(延喜式神名帳)에 기재되어 있는 신사를 시키나이사(式内社)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고대부터 진기제도는 전국적으로 퍼졌고, 질서로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진기제도는 국가 제사이지만, 천황제사와도 관계가 있다. 천황제사와의 관계가 강해진 것을 상징하는 것이 22사(社)의 제도이다. 기내(畿内,율령국가가 정한 행정구역)의 주요한 신사가 점점 천황의 쵸쿠사이샤(勅祭社)가 되고, 최종적으로 22사가 되었다. 한편, 지방의 진기신앙 체제도 이치노미야(一宮)・소샤(総社)제도에 따라 일정한 형태를 갖추었다. 지방마다 가장 많이 숭배되고 있는 것이 이치노미야이며, 고쿠시(国司)가 봉헌하는 신사를 한곳으로 모은 것이 소샤(総社)이다. 고대에는 국가가 진기신앙을 총괄하고 있었지만, 중세가 되어 점차 흔들리게 되었다. 장원제도가 널리 시행되고, 사령(社領)이 개개신사의 사적 소유물적인 성격이 강해지면서 진기제도는 점차 국가적 지원을 잃어갔다. 중세적 제도의 특징 중 하나는, 지샤부교(寺社奉行)제도가 생긴 것이다. 이것은 무가(武家)정권이 신사제도의 관리에 개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샤부교의 내용은 조금씩 변하지만, 제도 그 자체는 에도(江戸)시대까지 이어졌다. 근대의 진기제도는 왕정복고, 신무창업(神武創業)의 이념에 따라 추진되었는데, 고대의 제도・기관을 참고로 하면서도 새로운 국가원리에 정합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진기관재흥(神祇官再興), 진기관이 진기성(神祇省)으로 개조되는 등 변천을 거쳤지만, 진기행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가 종교정책의 근간이었다. 사격(社格)제도가 새로이 정비되고, 간코쿠헤이샤(官国幣社)제도가 생겨 신사의 서열화가 진행되었다. 또 메이지국가는 근대천황제(또는 천황제도)를 확립하는데, 이 천황제와 진기제도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천황・황실에 관해서는 ‘황실전범(皇室典範)’이 제정되어 황위(皇位)계승이 명문화되고, 법적 정비도 진행되었다. 이 체제가 크게 변화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GHQ(연합군총사령부)에 의해 ‘신도지령(神道指令)’이 내려져, 이른바 국가신도체제는 해체되었다. 단기간의 종교법인령 시대를 거친 뒤, 현재의 종교법인법시대를 맞이한다. 이 법률하에서 신사신도는 국가적 보호를 받는 제도가 아니라 다른 종교와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그래서 전국의 대다수 신사를 포괄하는 종교법인으로 신사본청이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신사신도는 제도적으로 큰 변천을 거쳐왔지만, 신사제사를 행하는 주체에도 몇 가지 변천이 있었다. 고대에 국가적 제사를 담당한 것은 진기관(神祇官)이었지만, 각 지방이나 씨족의 숭배를 받는 신사는 구니노미야츠코(国造), 우지노카미(氏上) 등이 제사에 관여했다. 또 개개의 신사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모시는 신관(神職)이나 미코(巫女)도 존재했다. 신불습합(神仏習合)의 영향이 커지면서 샤소(社僧), 벳토(別当)와 같은 종류도 출현했다. 근세까지는 각각의 신사를 관할하는 세습의 신관 집안(神職家)인 샤케(社家)가 큰 존재였지만, 메이지시대가 되어 신사가 ‘국가의 종사(宗祀)’로 규정됨에 따라 샤케제도는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실질적 의미에서 샤케의 재흥 또는 계승이 보인다. 신관 양성을 위한 독자적인 기관이 생긴 것은 메이지 15년(1882)이다. 고쿠가쿠인대학(國學院大學)의 전신인 고텐코큐죠(皇典講究所)가 최초의 것이다. 현재, 신관 양성기관 대학으로는 고갓칸대학(皇學館大學)과 고쿠가쿠인대학이 있다.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