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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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Title
미와류신도
Japanese Title
三輪流神道
Text 나라현(奈良県) 오미와(大神)신사의 진구사(神宮寺)였던 뵤도사(平等寺)・다이고린사(大御輪寺)를 중심으로 성립, 전개된 료부(両部)신도 일파의 신도설이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통상 뵤도사를 창시한 게이엔(慶円,1140~1223)이 원조로 여겨지고 있다. 그에 대한 확실한 전기인 『三輪上人行状』에 그와 진기(神祇)에 얽힌 몇 개의 사적(事跡)이 기록되어 있지만, 명확히 신도설의 설립을 보여주는 내용이 전혀 없으므로, 이것을 후세의 가탁(仮託)으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 이와 같이 게이엔시대에 어느 정도 이 신도설이 형성되어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지만, 분에이 3년(文永,1266)에 『三輪流神祇灌頂私記』가 언급되어 있는 등, 적어도 가마쿠라(鎌倉) 중기에는 이 신도설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같은 지역에서 명확하게 미와류신도설의 형성이 인정된 것은 에이손(叡尊,1203~90)에 의한 본래의 진구사인 다이고린사 부흥 이후의 것으로, 이후 그와 그 문류(門流,西大寺流)를 중심으로 미와의 신도설이 전개되었다. 사이다이지류(西大寺流)는 에이손이 참궁(参宮)한 이후 이세(伊勢)의 료부신도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사이다이지류로 인해 미와에 료부신도설의 대대적인 도입이 이루어지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최초기의 저작으로는 분보 2년(文保,1318)에 성립한 『三輪大明神縁起』가 있다. 이 속에서 미와신(三輪神)과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太神)가 동체(同体)라는 것이 주장되어, 이세 신도설과의 융합이 꾀해졌다. 이후 뵤도사와 다이고린사를 중심으로 미와류신도설이 서로 계승되었고, 분메이 18년(文明,1486)에 성립된 『兼邦百首歌抄』에서는 신도의 네 유파(神道四流)의 하나로 ‘三輪鏡円聖人’의 신도가 제시되어, 그 존재가 세간에도 전파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미와류신도계 서적 대부분은 근세의 것이고, 그것도 상당 부분이 요시다신도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중세의 그 실태에 대한 해명은 아직 그렇게 진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와찬서(三輪叢書), 근년의 오미와신사사료(大神神社史料)・미와류신도편(三輪流神道篇 제5권, 6권, 10권) 등의 출판으로 기초자료 대부분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고, 『三輪流神道の研究』(大神神社社務所編)와 같은 종합연구서도 발표되어, 금후 연구가 더욱 진전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토 사토시(伊藤 聡)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

뵤도사(平等寺, 나라현奈良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