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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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중세・근세의 유파와 학파(中世・近世の流派と学派)
Title
요시카와신도
Japanese Title
吉川神道
Text 에도(江戸)시대 전기의 신도가 요시카와 코레타리(吉川惟足,1616~94)가 창설한 신도설. 코레타리는 원래 에도 니혼바시(日本橋)의 상인이었는데, 당시 요시다가의 실력자 오기와라 카네요리(荻原兼従,1590~1660) 밑에서 신도와 와카(和歌)를 배우고 점점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 후 요시다가의 호주가 어린데다가 카네요리의 제의를 받아 요시다신도의 도통(道統)을 계승했다. 그 때의 계약에는 어린 호주가 성장한 후에 요시다신도의 도계를 그에게 전수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실현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코레타리는 막부(幕府)의 중신이나 쓰가루신정(津軽信政)등의 유력한 다이묘(大名)의 신임을 얻어서 에도에서 신도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나중에는 장군보좌역이면서 가이즈번주(会津藩主)인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1611~72)의 후원으로 지샤부교(寺社奉行) 지배하의 신도가타(神道方)에 취임하고, 막부 신하의 서열에 서게 되었다.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1618~82)는 마사유키를 통해서 코레타리를 알게 되고, 나중에 스이카(垂加)신도 형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 코레타리의 뒤를 아들인 츠구나가(従長)가 잇고, 요시카와신도는 ‘리가쿠(理学)신도’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이 츠구나가 시대에 요시카와신도는 비전(秘伝)을 체계화하고 신도교학으로서의 발전을 이루었다. 츠구나가가 특히 정성을 다한 비전은 1위부터 사중옥비(四重奥秘)까지의 네 단계였다. 문인들에게는 학문상의 진전 상태에 따라 이 비전의 전문이 전해졌다. 요시카와신도의 신도설은 그 대부분이 요시다신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독자적인 주장으로 주목되는 부분은 마사유키나 안사이와의 접촉에서 얻었다고 전해지는 송학 지식의 원용(援用)이다. 즉 이기(理気), 마음(心), 태극(太極), 귀신(鬼神) 등에 대한 지식이나 이론을 곳곳에 새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코레타리와 츠구나가 부자가 안사이와 학문적인 교류를 가졌다고는 하나, 얼마만큼 송학을 연구했고 이해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그리고 ‘鬼神来格’나 ‘生死落着’ 등으로 이름지어진 비전에서는 송학의 지식과 이론에 따라 신도적 사생관을 제시하려고 한 의도가 보이지만, 그 주장은 사상적으로 봐도 상당히 말초화(末消化)된 부분도 많고, 사생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확한 것을 내놓지는 않았다. 또 요시카와신도는 의식이나 행법보다도 천하국가를 세우는 길, 보전하는 길, 즉 치도(治道)로서의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군신・주종의 관계에 있어서의 도리, 윤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무사도적(武士道的)인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 코레타리는 여러 신 중에서, 특히 구니노토코타치를 중요시하고, 송학, 주자학에서 말하는 태극의 이론을 사용하여 ‘구니노토코타치는 태극이다’라고 하여 동일시하였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이 구니노토코타치를 자신의 마음에 두고 있으며, 본래적으로 신인일체(神人一体)의 길이 보증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또 신인일체의 경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의례나 행법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요시카와신도는 코레타리, 츠구나가 이후 교학적인 전개가 그다지 보이지 않고, 그 존재도 신도사상사(神道思想史)에서 결코 큰 것은 아니지만, 막부의 한 행정기관의 장(公儀神道方)으로서 막부말에 이르기까지 그 입장을 유지해 갔다. ➠요시카와 코레타리(吉川惟足)
야자키 히로유키(矢崎浩之)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