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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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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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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2: |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
Title | 오칸미치 |
Japanese Title | おうかんみち |
Text | 덴리교계(天理教系)의 교단이다. 덴리교의 교사였던 야마다 우메지로(山田梅次郎,1875~1941)가 다이쇼 원년(大正,1912)에 신의(神意)를 감득하고, 그 후 덴리연구회, 덴리산린코(天理三輪講) 등 몇개의 덴리교계 교단을 거쳐서 개교했다. 교리와 의례는 덴리교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쇼와 11년(昭和,1936) 1월 11일, 우메지로는 천계(天啓)로부터 덴리교 교조인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1798~1887)의 남편 젠베이(善兵衛)의 환생으로서 자신이 감로대(甘露台)라는 자각에 이르고, ‘간로스이우케(甘露水授け,간로수를 받음)’라는 구제(救済)의 비의(秘儀)를 시작했다. 동시에 당시의 덴리교 내부에서는, 당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 구제의 업 ‘오우기노우케(부채를 받음,扇の授け)’와 ‘이키노우케(息の授け,숨을 받음)’를 부활시키고 있었다. 다음 해에는 도쿄, 나라(奈良), 나가노(長野)에서도 ‘간로스이우케’를 행했다. 12월 23일에, 1년간의 활동으로 조직이 정비되어 나고야 시내의 자택에서 덴리카미노쿠치아케 장소(天理神之口明場所)를 결성했다. 그러나 다음 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관계자가 검거되었다. 그리고 쇼와 14년에 결사금지 명령을 받았다. 16년에 야마다 우메지로가 세상을 떠난 후, 관계자가 독자적으로 교단을 창시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쇼와 21년에 신자인 에가미 토시타네(江上寿胤,1904~71)가 ‘간로스이우케’의 계승을 선언하고, 이치레츠회(一列会)라는 명칭으로 도쿄에서 포교를 재개했다. 이것을 교단에서는 ‘이치의 세습(理の世襲)’이라 부른다. 그 후 교단명을 몇번 바꾸었는데, 쇼와 35년에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27년에 종교법인이 되었다. 그리고 성지가 나스(那須)로 정해져서 48년에 본부도 옮겼다. 덴리카미노쿠치아케 장소의 신자나 우메지로의 아이들이 개설한 교단은 다음과 같다. 히노모토신세이코(日の本神誠講,신자인 오카모토 츠에岡本ツエ가 개설), 쓰키히오칸미치(月日大還道,신자인 후카사와 마츠에深沢まつ枝가 개설), 쓰키히산세이(月日三世)의 미치마치타케본부(道真知岳本部,차녀 야마다 소메山田そめ가 개설), 신와교회(神和教会,차남인 야마다 킨지山田金治가 개설). 【본부】栃木県那須郡 【공칭신자수】약 11만3천명(신) 유미야마 타츠야(弓山達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