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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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Title
온타케교
Japanese Title
御嶽教
Text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 중 하나. 온타케신앙을 기반으로 하는데, 메이지(明治,1868~) 초기의 종교행정 과정에서 하나의 교파로서 조직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온타케산(御嶽山)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근세의 고샤(講社)와 같은 교단의 발전적인 형태이다. 시모야마 오스케(下山応助, 생몰연도 미상)가 메이지유신 이후, 온타케신앙을 결집할 필요를 느끼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여 조직화가 진전되었다. 오스케는 메이지 6년(1873)에 대대로 있던 고(講)를 기반으로 온타케교회를 설립. 13년에는 히라야마 세이사이(平山省斎)가 조직한 다이세이교회(大成教会)에 유입되었다. 15년(1882)에 다이세이교가 독립한 직후, 신도온타케파로서 독립하여 같은 해 온타케교가 되었다. 본부(大本庁)가 도쿄의 간다(神田)에 설립되었다. 오스케는 독립이 인정된 후 행방불명이 되어서 히라야마 세이사이가 초대 관장에 취임했다. 또 2대 관장은 원래 승려였던, 유신이후 신도가가 된 오토리 세츠소(鴻雪爪,1814~1904)이다. 그 후, 관장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취임하는 경우가 많고 비교적 단기간에 교체되었다. 쇼와 12년(昭和,1937)에 8대 관장에 취임한 와타나베 긴지로(渡辺銀次郎,1871~1949)가 온타케신앙의 활성화에 힘쓰고, 등배(登拝)를 장려하여 이로 인해 조직이 확대되었다. 15년에 종교단체법에 의한 종교단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쇼와 21년에 종교법인령에 의한 법인, 27년에 종교법인법에 의한 법인이 되었다. 전시 중의 공습으로 인해 본부가 소실되고, 23년에 기소(木曽)에 대교전(大教殿,산의 본부)을 설립했다. 그리고 9대 관장인 와타나베 쇼키치(渡辺照吉,1906~82)의 시기인 39년에는 나라시(奈良市)에 본부(大本部)가 설립되어 현재의 ‘마을의 본부(里の本部)’가 생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르침의 체계화도 도모되었지만, 여전히 조직의 통일성은 높지 않는다. 온타케행자(御嶽行者)에 대한 신앙이 중심에 있고, 개개인의 고(講)나 교회의 독립성이 높다. 구니토코타치노미코토(国常立尊), 오나무치노미코토(大己貴命), 스쿠나비코나노미코토(少彦名命)를 온타케다이진(御嶽大神)이라고 통칭하고,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神) 등을 다 같이 모시고 있다.
【본부】奈良県奈良市 【공칭신자수】약58만명(문)
➠온타케신앙(御岳信仰)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