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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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Title
구로즈미교
Japanese Title
黒住教
Text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 중 하나이다. 신도계신종교의 개척자적인 존재이다. 구로즈미 무네타다(黒住宗忠,1780~1850)가 교조이다. 무네타다는 비젠국(備前国,현재의 오카야마현岡山県) 신사 네기(禰宜)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본래 신앙심이 깊었는데, 분카 11년(文化,1814)에 병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천명직수(天命直授)’라는 종교적 회심(回心)을 경험했다. 다음 해부터 강석(講釈)과 액막이(禁厭,마지나이)를 중심으로 한 종교활동을 시작하여 점차 신자를 늘려갔다. 그의 강석은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설법하는 방식이었는 그때그때 때에 맞춰서 자유자재로 말했다. 제자 중에는 무사(武士)도 많이 있었으며, 지식층 사람들도 폭넓게 끌여들이는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가 사망한 후, 이른바 육고제(六高弟,이와오 칸스케岩尾乾介, 가와카미 타다아키河上忠晶, 도키오 무네미치時尾宗道, 아카기 타다하루赤木忠春, 호시지마 료헤이星島良平, 모리시타 케이탄森下景端)라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각지에 가르침이 퍼졌다. 일설에는 막부말에 10만명정도의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유신 후의 메이지 5년(明治,1872)에 구로즈미코샤(黒住講社)로 그 활동이 공인되고, 9년에는 신도쿠로즈미파(神道黒住派)로 교파신도 중에서는 가장 빨리 일파 독립이 인정되었다. 초대관장으로는 무네타다의 손자인 구로즈미 무네아츠(黒住宗篤,1848~89)가 취임. 18년에는 오카야마시(岡山市)에 무네타다(宗忠)신사를 창건했다. 메이지 중기까지는 신자가 증가했지만, 그 후 교세는 정체기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대 관장 구로즈미 무네카즈(黒住宗和,1905~73)시대인 쇼와 25년(昭和,1950)에 교규(教規)가 개정되어, 관장이라는 호칭 대신에 교주(教主)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교주는 구로즈미 무네하루(黒住宗春,1937~)이다. 교토대학 철학과 출신인 무네하루는 문화활동 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가르침은 무네타다가 말한 칠개조(七箇条) 중에서 ‘일일가내심득지사(日々家内心得之事)’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 외 그가 그때그때 부르는 노래도 가르침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무네타다의 사상은 당시의 사회배경을 생각하면 혁신적이라고 평가된다. 오카야마를 중심으로 주로 서일본에서 운동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지부교회도 서일본, 특히 쥬고쿠(中国) 시코쿠(四国)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본부】岡山県岡山市 【공칭신자수】약 3십만명(문)
➠구로즈미 무네타다(黒住宗忠)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