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詳細表示 (Complete Article)

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Title
고소코타이진구아마츠교
Japanese Title
皇祖皇太神宮天津教
Text 신도계신종교이다. 다케우치 키요마로(竹内巨麿,1874~1965)가 개창한 교단이다. 도야마현(富山県) 네이군(婦負郡) 신메이촌(神明村)의 다케우치 집안(竹内家)은, 태고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통보(神統譜)와 진무(神武)천황 이전의 고대왕조 전승 등이 기록되어 있는 고문서(‘竹内文書’라 부른다)나 신포(神宝)로 여겨지는 고기물(古器物)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키요마로는 메이지 25년(明治,1892)에 이것들을 가지고 상경했다. 그는 온타케교(御嶽教)에 입신하여 거기서 신도의 교리나 의식을 배우고, 집안에 전해지는 고문서 해독 지도를 받았다. 그 사이에 2번에 걸쳐 구라마산(鞍馬山)에서 수행을 하고, 메이지 33년에 포교하기 위해 방문한 이바라기현(茨城県) 이소하라(磯原)에서 온타케교 아마츠(天都)교회를 열고, 구소코타이신궁(皇祖皇太神宮)을 모셨다. 키요마루는 이 고소코타이신궁이 태고의 천황에 의해 창건되어 다케우치 집안이 대대로 그 신관을 맡아 왔다고 주장, 신보를 몰래 관람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군인이나 황도(皇道)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신봉자가 생기고, 쇼와(昭和,1926~) 초년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1만 수천명의 신자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쇼와 5년(1930) 경찰로부터 국화문장(菊花紋章)과 유사한 도형의 사용과 신보의 공개적인 열람이 금지되었다. 8년에는 2번째 처분을 받고, 키요마루의 사상 활동이 당시의 국체론자나 종교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11년에 불경죄 용의로 키요마루 이하, 교단 간부가 체포되었다. 신전(神殿)은 모두 부서지고 4천점에 이르는 문헌과 신보는 압수되었다. 대심원에서 심리(審理) 중에 패전을 맞이하여, 교단은 쇼와 21년에 야마토교(大日教)로서 재발족했다. 그러나 25년에 초국가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로 여겨져서 해산을 명령받았다. 27년에 현재 명칭으로 종교법인법에 의한 종교법인이 되었다. 40년에 키요마루가 사망하자 장남인 요시미야(義宮)가 뒤를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부】茨城県北茨城市 【공칭신자수】불명(신)
유미야마 타츠야(弓山達也)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

고소코타이진구아마츠교 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