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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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Title
쇼로쿠신토야마토야마
Japanese Title
松緑神道大和山
Text 신도계종교. 다사와 세이시로(田沢清四郎,1884~1966)가 교조이다. 세이시로가 다이쇼 8년(大正,1919) 산신을 모시는 사당(堂宇)을 건립하고, 이상한 천체(天体)현상을 겪고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주 초기에는 세이시로의 손이 닿기만 해도 병이 나았다고 하여 ‘손의 신님(掌の神様)’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세이시로는 9년 여름에 아야베(綾部)에 있는 오모토(大本)본부를 방문해서 3일정도 체재한다. 11년에는 차녀가 신의(神意)를 감득하고 계전(啓典)이 내렸다고 하여 세이시로는 세속과 절교하고 계전의 해독과 수행의 생활에 들어간다. 쇼와 4년(昭和,1929) 세이시로가 있는 곳에 갈 수 없는 신자의 요망에 답하기 위해서 기관지(機関誌) 『영원의 등불(永遠の燈火)』이 간행되어 다음 해 1월 5일, 정신수양사상선도를 목적으로 하는 쇼로쿠신토야마토야마회(松緑神道大和山会)가 결성된다. 6년, 세이시로의 12년동안의 수행이 만원(満願)이 되어 적극적인 포교가 시작된다. 패전을 맞이하여 포교는 일시적으로 정지되었지만, 세이시로의 장남인 야스사부로(康三郎,1914~)가 도쿄(東京)에서 돌아와 교단시설이 정비되고, 쇼와 24년에 포교를 재개한다. 그 후 논밭을 개간하여 본부내에서 거의 자급자족을 확립한다. 30년, 생활학원 야마토야마마츠카제쥬쿠(生活学苑大和山松風塾)가 개설되어, 신전과 납골시설 등이 완성된다. 44년에는 성지 1,850헥타르를 취득하고 지금까지 식림(植林)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본부에는 부속고등학교의 학생을 포함하여 약 3백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교의・의례로서 영의 공양이 중요시되고, 수행으로는 본부 부동폭포(不動滝)에서의 미즈교(水行)와 자발적인 작업인 ‘게자노교(下座の行)’ ‘솟카노교(足下の行)’가 있다. 신일본종교단체연합회와 세계종교자평화회의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매일 신(神)・국(国)・인(人)을 위하여 1엔씩, 최소 3엔이라도 공양하자는 ‘산포노교(三捧の行)’나 한끼를 줄여 공양하여 욕심을 절약하자는 운동 외, 난민구제와 아시아 각국의 나병환자를 구하자는 사업 등, 사회적 실천도 왕성하게 행하고 있다.
【본부】青森県東津軽郡 【공칭신자수】약6만명 (문)
유미야마 타츠야(弓山達也)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