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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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Title
진구교
Japanese Title
神宮教
Text 메이지(明治,1868~)시대의 신도교파(神道教派)이다. 보통 13파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메이지 중기부터 교파신도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우라타 나가타미(浦田長民)에 의해 조직화 되어 다나카 요리츠네(田中頼庸)가 초대관장이다. 교부성(教部省) 설치가 결정된 직후인 메이지 5년(1872) 7월에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쇼구지(小宮司)였던 우라타 나가타미가 신궁교회 개설을 신청했다. 그리고 당시의 와타라이현(度会県, 현재의 미에현三重県)을 중심으로 각지에 설교소를 열었다. 설교소에 모인 교도를 조직화하기 위해서 각지에 고샤(講社)를 설치하고, 6년 10월에 이들이 가미카제코샤(神風講社)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근세부터 있던 이세코(伊勢講)도 신궁교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신불합동포교를 추진하기 위해서 설치된 대교원(大教院)이 8년에 해산하기 때문에, 신궁교원은 조직을 재편성하고 전국적인 교화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또 15년에 신궁 교도직의 겸직이 폐지되어 신궁교원은 신궁사청(神宮司庁)에서 분리되고 진구교가 되었다. 우라타는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그 후 교화활동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던 다나카 요리츠네가 초대 관장에 취임했다. 신자수는 메이지 20년까지는 증가하였지만 그 후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메이지 31년, 민법시행 때 진구교를 동법(同法)에 의한 신궁숭경단체로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32년 9월, 진구교를 해산하고 재단법인 진구호사이회(神宮奉斎会)가 되었다. 이 회는 이세신궁의 숭배, 천황숭배, 국체 국전의 강구(講究)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진구교의 기본이념을 계승하였다.
➠다나카 요리츠네(田中頼庸)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