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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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Title
신도슈세이하
Japanese Title
神道修成派
Text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神道十三派)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교파신도로 닛타 쿠니테루(新田邦光,1829~1902)가 교조이다. 시코쿠(四国) 아와(阿波)의 무사 아들로 태어난 쿠니테루는 막부말에는 존왕양이(尊王壤夷)적인 정치활동을 하였다. 원래 ‘일본은 신국이고, 일본민족은 신의 자손이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신도를 번창시켜 인민을 교도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지 원년(明治,1868)에 히다(飛騨)지방을 관리하고 있을 때, 참언(讒言)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 때 오시번(忍藩, 현재 사이타마현埼玉県)에 유폐(幽閉)되었다. 이 사건도 관계가 있다고 보지만, 그 이후 신도의 포교할동에 전념하게 된다. 메이지 5년에 교도직(教導職)이 되고 다음 해 슈세이코샤(修成講社)를 창립한다. 도쿄(東京)의 아리스가와궁(有栖川宮) 저택내에 본부를 설치했다. 9년에는 신토슈세이하로서 구로즈미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13파로서는 가장 빠른 독립을 달성했다. 쿠니테루는 초대관장에 취임한다. 막부말기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문인집단에 들어가 온타케(御嶽)신앙이나 후지(富士)신앙의 교회를 산하에 두게됨으로서 메이지 중기까지 교세는 급속히 확대되어 갔다. 35년에 쿠니테루가 사망하자 닛타 쿠니사다(新田邦貞)가 2대 관장을 계승했지만, 메이지말 이후 교세는 그다지 증가하지 않게 되었다. 쇼와 15년(1940) 종교단체법에 의한 종교단체가 된다. 쇼와 21년 종교법인령, 27년에 종교법인법에 의한 법인으로서 등기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그다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 않다. 유교윤리를 중심으로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가치관 변화에 대응하는 것에 대한 곤란함도 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도교파의 일파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단명은 당초부터 일관되게 현재의 이름 그대로이다. 그리고 슈세이하라는 명칭의 유래는 『고지키(古事記)』의 슈리코세이(修理固成)라는 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르침은 신도의 기본이념에 유교윤리를 겹친 것으로 되어 있다. 막부말에 쿠니테루가 문인을 상대로 한 강의는 그 후 ‘교도대의(教道大意)’로 정리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심적인 교의서로 취급된다.
【본부】東京都杉並区 【공칭신자수】약4만2천명
➠닛타 쿠니테루(新田邦光)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