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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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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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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2: |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
Title | 신도타이세이교 |
Japanese Title | 神道大成教 |
Text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교파신도로 히라야마 세이사이(平山省斎,1815~1890)가 조직했다. 세이사이는 오슈미하루(奥州三春,현재 후쿠시마현福島県)의 검도사범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막부의 행정관료 히라야마 겐타로(平山源太郎)의 양자가 되었다. 가독(家督)을 계승하여 막부말에는 외국봉행 등의 직업에도 몸을 담고 있었다. 외국 요인과의 교섭도 수없이 많이 경험했다. 막부말 때에 미소기교(禊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메이지유신 후 곧 종교활동으로 몸을 돌렸다. 주전파(主戦派)의 막신(幕臣)으로 간주되어서, 한 때 시즈오카(静岡)에 칩거를 명령받았다. 그런 일도 있고, 정치세계가 싫어진 것이 종교계로 몸을 돌린 한 요인이 되었다. 메이지 12년(明治,1879)에 온타케코(御嶽講), 미소기(禊)교회 등의 신자를 결집시켜, 다이세이(大成)교회를 조직한다. 이 교회는 15년에 다이세이교로서 일파 독립한다. 세이사이의 조직력으로 여러 성격을 가진 교회를 결집한 교단이었기 때문에, 23년에 세이사이가 사망하자 점차 교세는 쇠퇴하게 된다. 그리고 메이지 15년 이후 다이세이교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던 렌몬(連門)교회가 27년에 『요로즈쵸호(万朝報)』가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의 이유로 사회적인 비판을 받은 일도 다이세교에게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때까지 산하에 있던 2, 3의 교회가 독립된 종교법인이 되었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단으로서의 통일성은 아주 약하다. 원래 다이세이교라는 명칭도 미소기교, 도궁술(淘宮術), 심학(心学) 등 여러가지 것을 ‘모아서 대성한다’는 것에서 나왔다. 즉 기독교의 위협에 대항하고, 서양문명의 유익한 부분은 수용하면서도 전통문화의 활용으로 국민을 교화한다는 방침으로 조직된 것이었다. 신도를 중심으로 유교논리와 그 외의 가르침이 가미되어 교리에 여러가지 요소가 합쳐져 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사회상황하에서는 존재 의의가 약해지고, 현재는 그다지 종교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본부】東京都渋谷区 【공칭신자수】약5만1천명(문) ➠히라야마 세이사이(平山省斎)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