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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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Title
후소교
Japanese Title
扶桑教
Text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 중 하나이다. 사쓰마(薩摩)출신인 시시노 나카바(宍野半,1844~84)가 조직화하였다. 하세가와 카쿠교(長谷川角行,1541~1646)가 개조이고 후지(冨士)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데 메이지(明治)시대의 종교정책 아래에서 신도색이 강한 교단으로 발전하였다. 시시노는 막부말에 히라타파(平田派)의 국학을 배우고, 메이지유신 후에 신도의 조직화를 꾀했다. 메이지 6년(1873)에 후지산 센겐신사(浅間神社)의 초대 구지(宮司)로 취임하고, 대교원(大教院) 직속의 후지일산(富士一山)교회를 결성했다. 도쿄의 시바신메이쵸(芝神明町)에 대사(太祠)를 설립하고, 다음 해 9년에 후소교회로 개칭한다. 이것은 15년에 신도후소파로서 일파 독립하고, 같은 해 신도후소교로 개칭했다. 8년에 이토 로쿠베에(伊藤六郎兵衛)를 교조로 하는 마루야마(丸山)교회를 산하에 두고 초기에는 상당히 급격하게 조직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시시노의 사후, 마루야마파와 반마루야마파의 대립이 격렬해지고, 20년에는 마루야마교회가 이탈해서 세력은 반감되었다. 메이지 27년에 시시노 타케마루(宍野健丸,1876~1928)가 2대 관장에 취임한다. 32년에 본부를 도쿄후(東京府) 시모토요타마군(下豊多摩郡) 시부야무라(渋谷村)에, 다이쇼 7년(大正,1918)에 현위치로 이전한다. 다이쇼말부터 쇼와(昭和)초에 걸쳐서 관장직의 계승을 둘러싸고 일종의 교단분열이 일어나고, 조직이 혼란해진다. 타케마루가 사망한 후, 쇼와 4년(1929)에 시시노 켄이치(宍野健弌,1909~83)가 3대 관장직에 취임하여 조직과 재정의 개혁을 꾀했다. 15년에 종교단체로서 등기한 것을 계기로 조직을 정비한다. 20년에는 공습에 의해 본부가 소실되어 많은 자료를 잃어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1년에 종교법인이 되었을 때에는 후지(富士)신앙과 다른 이질적인 교회는 이탈을 권유한다는 방침이 취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은 조직적인 잡거성(雑居性)이 현저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는 산악신앙의 흐름을 계승하는 교단이라는 정체성이 보다 명확해졌다. 현재의 관장은 스기야마 이치타로(杉山一太郎)이다. 주신은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天之御中主神), 다카무스비노카미(高星産霊神), 가미무스비노카미(神皇産霊神)으로 이를 총칭해서 오미오야노카미(大祖参神, 별칭은 후지센겐노오카미富士仙元大神)로 한다. 『神理大要』를 교전으로 한다.
【본부】東京都世田谷区 【공칭신자수】약4만6천여명 (문)
➠시시노 나카바(宍野半)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