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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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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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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2: | 근대의 교단(近代の教団) |
Title | 혼부신 |
Japanese Title | ほんぶしん |
Text | 덴리교(天理教)계통의 혼미치(ほんみち)로부터 분열된 교단이다. 오니시 타마(大西玉,1916~69)가 창시자이다. 쇼와 36년(昭和,1961) 덴리교의 분파인 혼미치 내부에서 오니시 아이지로(大西愛次郎,1881~1958)의 차녀 타마를 천계자(天啓者)인 ‘미로쿠(みろく)’로 하는 덴리미로쿠회(天理みろく会)로서 발족했다. 41년에 종교법인법에 의해 법인이 되었다. 당시, 타마는 혼미치 신자에게는 덴리교 교조인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1798~1887)의 환생이라고 믿어졌는데, 쇼와 22년부터 더욱 더 자신이 의문점을 가지고 있던 교리의 해명에 몰두하기 위해서, 정양을 이유로 교토(京都)의 혼미치 신도의 집에 틀어박혔다. 다음 해 1월, 교단의 대표임원과 교리 논쟁을 일으키고 독립했다. 당초, 혼미치 본부를 떠나, 신자들이 모이는 응접장소로 다카이시시(高石市) 하고로모(羽衣)의 혼미치본부 가까이에 있는 신자가 헌납한 민가를 사무소로 사용했다. 그 후 타마의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권유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시오지리시(塩尻市)로 옮겼다. 신자의 대부분이 서일본에 거주하고, 지리적인 이유로 44년에 오카야마시(岡山市)의 현위치로 본부가 이전했다. 같은 해 9월1일 타마는 사망하는데, 타마의 유명(遺命)에 따라 천계자(天啓者) ‘간로다이(甘露台)’로 여겨지는 다케다 소신(武田宗真)이 후계자가 되어, 행사, 제의, 교설, 포교의 모든 것을 통괄했다. 현재의 혼부신에서는 이념과 언동을 개선하는 수단으로서 ‘몬교(聞行)’(내관적 반성법)나 ‘선도(善導)’(릴렉스법을 가지고 고민을 융화시킨다), 또 ‘용혼(勇魂)의 언령(言霊)’을 염두에 두어 일상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정신을 심는 등을 주된 활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봉사에 의한 ‘히노키신(매일의 봉사근무)’이 정해져 있다. 시오지리시에는 특정의 종파 의식을 배제한 ‘월드건강센터’를 설립하고, 하와이에는 순건강식품으로 ‘봄심황(春うこん)’을 재배한다. 59년 봄에는 하와이에 2천명의 유지가 모이고, 63년 가을에는 북경에서 2천명의 신자가 모여, 호놀루루시장의 평화메세지를 전하는 등 평화운동의 일단을 책임지고자 하였다. 그리고 혼부신에서는 교조 겸 본석(本席)이었던 이부리 이조(飯降伊蔵,1833~1907)시대의 덴리교를 본보기로 삼는데, 혼미치를, 본가가 출현할 때까지의 잠정적인 조직이라는 의미로 ‘가리야(仮屋,빌린 집)’로 자리매긴다. 【본부】岡山県岡山市 【공칭신자수】약90만명(신) 유미야마 타츠야(弓山達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