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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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아이자와 세이시사이
Japanese Title
会沢正志斎
Text 1782~1863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유학자, 미토(水戸)의 번사(藩士). 이름은 야스시(安). 자는 하쿠민(伯民). 통칭은 쓰네조(恒蔵)이다. 호는 세이시사이(正志), 게이사이(憩斎). 어릴 적부터 공부를 좋아했고, 간세이 3년(寛政,1791)에 후지타 유코쿠(藤田幽谷,1774~1826)에게 사사받고, 유학, 사학을 배웠다. 11년에 쇼코관(彰考館)의 사자생(寫字生)이 되고, 나중에 22세에 관원으로 승격했다. 『大日本史』의 편찬에 참가하여 재능을 인정받아, 분카 원년(文化,1804)에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 집안의 시독(侍読)이 되었다. 분카 7년에는 오츠하마(大津浜)에 상륙한 영국인과 필담을 나누는 담당자가 되었는데, 그 때의 회의를 『諳夷問答』로 기록했다. 이러한 외국선(外国船) 접근에 대한 위기의식이 8년의 『新論』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은 나중에 존왕양이운동의 성전(聖典)으로도 불린다. 분카 12년에 번주 계승문제가 일어나 후지타 토코(藤田東湖) 등과 나리아키를 옹립하는데 기여했다. 번주인 나리아키라 밑에서는 덴포 연간(天保,1830~1844)의 번정개혁에 활약했다. 쇼코관 총재와 고도관(弘道館) 총재를 역임하는 등, 주로 미토번(水戸藩)의 문교계(文教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분큐(文久) 3년 7월에 사망. 향년82세. 『迪彝篇』, 『読直毘霊』 등이 있다.
야자키 히로유키(矢崎浩之)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