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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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아지로 히로노리
Japanese Title
足代弘訓
Text 1784~1856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 신궁사관(神宮祠官). 통칭은 시키부(式部), 호는 유타이(寛居). 덴메이 4년(天明,1784), 이세국(伊勢国) 야마다(山田)에서 태어났다. 외궁(外宮) 네기(禰宜)인 아시요 히로토시(足代弘早)의 아들이다. 17세에 가독(家督)을 상속받았고, 내궁(内宮)의 아라키다 히사오유(荒木田久老,1746~1804), 모토오리 하루니와(本居春庭,1763~1828), 모토오리 오히라(本居大平,1756~1833), 가메다 스데모토(亀田末雅,1761~1823), 시바야마 모치토요(芝山持豊,1742~1815) 등을 스승으로 섬겨서 국학, 와카(和歌), 율령, 고사(故事)를 배우고, 고증(考証)과 유찬(類纂)에 힘썼다. 그러는 한편 사회정세에도 관심이 깊었다. 풍속의 숙정(粛正)을 위한 청원서를 막부에 제출하였으며, 덴포(天保,1830~1844)의 대기아(大飢餓)에는 동지를 모아서 궁민구제(窮民救済)에 진력을 다 했다. 각지의 국학자나 유자(儒者), 문인들과도 교류를 했는데, 특히 오시오 헤이하치로(大塩平八郎)와 친했고, 오시오(大塩)소동 때에는 오사카(大阪)에서 취조를 받았다. 안세이 3년(安政,1856)에 병에 걸려 야마다(山田)에서 사망, 향년73세. 저서는 『日本紀人名部類』, 『続日本紀人名部類』, 『寛居雑纂』, 『大塩平八郎一件記』 등이 있다.
모리 미즈에(森 瑞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