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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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이쿠타 요로즈
Japanese Title
生田 万
Text 1801~1837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이다. 교와(享和) 원년에 태어났다. 고즈케국관림번사(上野国館林藩士) 이쿠타 노부카츠(生田信勝)의 아들이다. 생전의 이름은 구니히데(国秀), 호는 다이츄 도진(大中道人)이다. 이쿠타 미치마로(生田道麿), 스가와라 미치마로(菅原道満)라고도 했다. 소년시대부터 번교(藩校)에서 배웠고, 시문을 좋아했기 때문에 번교의 학풍(崎門)에는 맞지않아 이쿠타가의 조상인 사카에(栄)의 저서인『大中経』로 독학했다.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의 글을 접하고 국학에 뜻을 두어, 분세이 7년(文政,1824) 아츠타네 문하에 입문하고 천문설과 우주론, 유교비판을 전개했다. 11년, 번정개혁의 의견서 『岩にむす苔』를 제출했지만 건의서는 무시되고 번적(藩籍)에서 추방되었다. 각지를 전전하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이 깊어갔다. 덴포 7년(天保,1836) 에치고(越後) 가시와자키(柏崎)에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사쿠라엔(桜園)기숙사를 열었다. 에치고에는 천재(天災)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시와자키 대관(代官)에게 농민의 궁핍 상태를 호소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같은 해 2월에 일어난 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大塩平八郎の乱, 에도후기 오사카에서 오시오 헤이하치로가 구민을 위해 거병한 반란)에 영향을 받아, 8년 6월 동지들과 함께 가시와자키진야(柏崎陣屋)를 습격하였는데, 농민을 결집시키지는 못했고 실패하여 자살했다. 향년 37세이다. 저서는 『大中道人謾稿』, 『日文伝評論』, 『良薬苦口』 등이 있다.
모리 미즈에(森 瑞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