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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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이토 로쿠로베에
Japanese Title
伊藤六郎兵衛
Text 1829~1894년. 마루야마교(丸山教)의 교조이다. 분세이(文政) 12년 7월15일, 무사시국(武蔵国) 다치바나군(橘樹郡) 노보리토무라(登戸村, 현재 가와사키시川崎市 다마구多摩区)에 기요미야 겐로쿠(清宮源六)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4세 때 이토(伊藤)집안의 양자가 되어 가독(家督)을 상속한 후 로쿠로베에라는 이름을 받았다. 청년때부터 신앙심이 깊고, 기요미야 집안에 전해지는 마루야마코(丸山講, 富士講의 하나)를 재흥시키려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지 3년(1870)에 아내의 병이 치유된 것을 신에게 감사하자, ‘너 자신의 소원을 빌어라(自身願われや)’라는 계시를 받았다. 바로 단식 수행을 하였는데 그 때 이름을 ‘땅의 신 일심행자(地の神一心行者)’로 하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다음 해부터 포교활동을 개시했다. 발끝으로 서는 수행, 훈행(薫行), 무자(無字)의 수행 등의 고행을 거듭해서, 결국 사람들로부터 살아있는 신이자 수행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교도직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관헌으로부터 활동을 제지받았다. 그래서 당시 센겐(浅間)신사 구지(宮司)인 시시노 나카바(宍野半)의 권유를 받아, 메이지 8년 신자들과 함께 후지산일산강사(富士山一山講社, 15년에 후소교扶桑教로 일파 독립)와 합병하고, 후지일산강사 마루야마교회 본부를 설치했다. 그 후에도 난행, 고행을 계속하여 신자를 늘려갔다. 시시노가 사망한 후, 마루야마교와 후소교 산하의 다른 교회와의 대립이 뚜렷해져서 18년에 신도(본국)으로 전속했다. 메이지 20년경부터 가르침과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를 기록하여『御調』로 정리하였다. 메이지 27년 3월 30일에 사망, 향년66세. ➠마루야마교(丸山教)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