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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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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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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2: | 인물(人物) |
Title | 이와쿠라 토모미 |
Japanese Title | 岩倉具視 |
Text | 1825~1883년. 막부말유신기의 구게(公家) 정치가이다. 분세이(文政) 8년 9월 15일, 교토(京都)의 구게 호리카와 야스치카(堀川康親)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이와쿠라 토모야스(岩倉具慶)의 양자가 되었다. 막부말기에 궁정정치계에서 활약하였다. 화궁강시책(和宮降嫁策)을 추진하는 등 활동을 하였으나, 분큐 2년(文久,1862) 8월에 실각하고나서는 마츠오 타지마(松尾但馬)와 교토의 유력한 신사의 하급 신관(神職)을 불러들여서 정계의 상황 등을 내통했다. 게이오 3년(慶応,1867)경에는 곤타 나오스케(権田直助), 오치아이 나오아키(落合直亮) 등과 같은 재야 국학자를 규합하여 막부토벌운동과 신도사상을 결합했다. 유신이후의 메이지 신정부 때는 삼조실미(三条実美)를 이어 수뇌의 지위를 차지했고 후쿠바 요시시즈(福羽美静)들과 같은 국학자를 중용해서 정책을 세웠다. 메이지 15년(1882) 12월 18일, 궁내성 내규취조국(内規取調局)의 사무총재심득(事務総裁心得)에 취임했고, 스스로 10개조를 건의하여 진기관(神祇官)의 재흥과 진기관에서 관리의 서약(1조), 다이죠사이(大嘗祭)의 의례와 상장령(喪葬令)의 제도(7조), 신센미(神饌米) 헌공과 농사의 장려(9조) 등을 주장하여 국정과 신도의 결합에 고심했다. 메이지 16년 7월 20일, 도쿄에서 사망, 향년 59세. 아키모토 노부히데(秋元信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