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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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기타바타케 치카후사
Japanese Title
北畠親房
Text 1293~1354년. 가마쿠라(鎌倉)말부터 남북조(南北朝)시대에 걸친 구교(公卿)이다. 무라카미 겐씨(村上源氏)에 속한다. 에이닌(永仁) 원년, 모로시게(師重)의 아이로 태어났다. 고다이고(後醍醐)천황의 신임을 받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최고 관직을 넘어서 다이나곤(大納言)에 임명되었다. 요시다 사다후사(吉田正房), 마데노쿠지 노부후사(万里小路宣房)와 함께 이른바 ‘후삼방(後三房)’의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양육을 책임진 제2황자 요요시친왕(世良新王)이 요절했기 때문에, 겐토쿠 2년(元徳,1330)에 출가, 법명을 소겐(宗玄), 후에 갓쿠(覚空)라 했다. 겐무(建武) 신정부가 된 겐코 3년(元弘,1333), 진주후(鎮守府) 장군이 된 장남 아키이에(顕家)와 함께, 노리요시(義良)친왕을 모시고 무츠국(陸奥国)으로 내려가, 그 후 거병한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를 쫓아서 한번은 교토(京都)에서 승리했다. 그 후 이세국(伊勢国)으로 옮겼고, 이세신도와 관계를 깊이했다. 아키이에가 전사한 후 다시 노리요시친왕을 모시고, 무츠(陸奥)로 출항했지만, 도중에 심한 비바람을 만나 히타치국(常陸国)에 상륙했다. 동국(東国)을 남조(南朝)쪽으로 조직화하는 일에 힘쓰면서 『神皇正統記』, 『職原抄』를 저작했다. 그러나 동국 경영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거처하던 세키성(関城)에서도 패배하여 요시노(吉野)로 돌아갔다. 남조(南朝)의 중심적 지도자로서 1351년 이른바, ‘쇼헤이의 통일’로 교토에 들어갔다. 가즈헤이(和平)가 패한 후에도 남조를 지도했었지만, 쇼헤이 9년(正平,1354, 북조문화北朝文和 3년)에 아노우(賀名生)에서 62세로 사망. 이세신도에 관한 저작으로 『元元集』, 그 외에 『二十一社記』, 『真言内証義』 등의 저서가 있다.
요네이 테루요시(米井輝圭)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