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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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구니노미야 토모요시신노
Japanese Title
久邇宮朝彦親王
Text 1824~1891년. 막부말, 유신기의 정치가이다. ‘아사히코’친왕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후시미노미야 쿠니이에(伏見宮邦家)친왕의 제4번째의 아이다. 분세이 7년(文政,1824) 정월 28일 교토에서 태어났다. 첫이름은 구마치요(熊千代)・도미노미야(富宮)이다. 혼노사(本能寺)의 니치지(日慈)에게 유교와 불교를 배웠다. 덴포 7년(天保,1836)에 닌코(仁孝)천황의 양자가 되었다. 다음해 8월에 신노(親王)의 호칭을 받고, 시게노리(成憲)로 개명했다. 덴포 9년 윤4월 승려자격을 획득하여 존응입도(尊応入道)로 칭했고 청연원문주(青蓮院門主)를 거쳐 가에이 5년(嘉永,1852)에 천태종 좌주(天台座主)에 취임했다. 유신전에는 궁정내에서 구게(公家)・부케(武家) 합체파(公武合体派)의 중진으로 활약했다. 유신후에는 메이지 원년(1868) 8월, 반정부운동의 혐의로 친왕의 호칭을 빼앗기지만, 메이지 5년(1872) 궁이라고 칭하는 것을 허락받아, 8년 5월에 일가를 세우고 구니노미야라고 했다. 이 해 52세로 신궁제주가 되어 『神宮明治祭式』의 제정을 올렸고, 신전(神典)을 명백히 하는 신궁교원강구회(神宮教院講究会)를 창설했다. 또 대교정(大教正)을 겸했고, 신도제종(神道諸宗) 지도자들의 모임을 위해서 신궁진친회(神宮真親会)를 결성했다. 메이지 22년의 제56회 식년천궁(式年遷宮)를 앞두고 조신궁사(造神宮使)로 임명받아 고의(古儀)조사를 했고, 천궁 의식에 봉사했다. 메이지 24년 10월 25일에 사망, 향년68세.
나카니시 마사유키(中西正幸)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