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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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다마마츠 미사오
Japanese Title
玉松 操
Text 1810~1872년. 막부말 유신기의 국학자이다. 분카(文化) 7년, 산기지쥬(参議侍従)인 야마모토 키미히로(山本公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8세 때 다이고무료인(醍醐無量院)에서 출가하고(得度), 나중에 대승도법인(大僧都法印)에 취임되었다. 하지만 30세에 하산, 환속하여 야마모토 키켄(山本毅軒)이라고 개명하고, 나중에 다시 다마마츠 미사오로 개명했다. 처음에 오쿠니 타카마사(大国隆正)에게 국학을 배웠다. 그리고 기에이(嘉永)・안세이기(安政期)에는 이즈미(和泉)에게, 분큐(文久) 겐지기(元治期)에는 오우미(近江)의 사카모토(坂本)에 사숙(私塾)을 열어서 국학을 강의했다. 게이오 3년(慶応,1867), 문인인 미카미 효부(三上兵部)의 소개로 칩거 중인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를 알게 되어 왕정복고(王政復古)의 모의(謀議)에 참가했다. 진무창업(神武創業)이라는 용어는 그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며, 왕정복고의 소칙안(詔勅案)도 그의 기초(起草)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메이지 3년(1870)에 대학중(大学中)박사, 지도쿠(侍読)를 겸했지만, 야노 하루미치(矢野玄道)와 함께 정부의 문교정책을 비판하고, 메이지 4년 정월에 관직을 그만뒀다. 다음 해 5년 2월 15일, 63세로 병사했다. 26년에 증주삼위(贈従三位)에 임명되었다.
다케다 히데아키(武田秀章)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