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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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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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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2: | 인물(人物) |
Title | 쓰노다 타다유키 |
Japanese Title | 角田忠行 |
Text | 1834~1918년. 아츠타신궁(熱田神宮)의 구지(宮司). 통칭은 요시사부로(由三郎). 호는 이부키노야(伊吹舎), 시즈메노이와무로(鎮石室) 등. 덴포(天保) 5년 11월 6일, 시나노국(信濃国) 기타사쿠군(北佐久郡) 이와무라타(岩村田)에 이와무라타번사로 군봉행(郡奉公)・사강(侍講)・번교달도관(藩校達道館) 조교 등을 역임한 지카츠(近津)신사의 신관인 즈노다 타다모리(角田忠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안세이 2년(安政,1855) 봄에 탈번하여 에도(江戸)의 후지타 토코(藤田東湖)에게 입문, 같은 해 8월에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가 사망한 후에 그 문인이 되었다. 분큐 2년(文久,1862) 교토(京都)에 가서 『古史略』를 집필했고, 여러 번(藩)의 지사(志士)들과 교류를 가지며 존양설(尊攘説)을 주장했다. 분큐 3년 2월 교토등지원(京都等持院)의 아시카가(足利) 3대의 목상을 효수(梟首)했는데 체포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얻고 신슈이나다니(信州伊那谷)에 잠복했다. 게이오 2년(慶応,1866)에 교토에 가서 구게(公家) 사와타메카즈(沢為量, 노부요시宣嘉의 아버지)의 가령(家令)이 되어 국사에 전념했다 메이지 2년(1869)에 황학소감찰(皇学所監察), 3년에 학제토리시라베고요가카리(学制取調調御用掛), 4년에 대학출사(大学出仕)가 되었다. 한때는 참언(讒言)을 당하기도 했지만, 6년에 가모미오야(加茂御祖)신사의 소구지(少宮司), 7년에 아츠타신궁의 소구지(少宮司)를 맡게 되었고, 10년에는 아츠타신궁의 대구지(大宮司)가 되었다. 나중에 대구지는 구지로 개칭되었다. 이후 다이쇼 3년(1914)까지 그 중책을 맡고, 아츠타신궁 개조사업을 비롯하여 신비칙봉(神禰勅封), 곤구지(権宮司)증원, 칙제사(勅祭社)의 건백(建白), 지우향상(待遇向上) 등, 아츠타신궁의 부흥에 진력을 다 했다. 다이쇼(大正) 7년 12월 15일에 사망, 향년85세. 저서로는 앞서 소개한 『古史略』 외 『葬事略記』, 『神代百首物語』, 『熱田神宮略記』 등이 있다. 호리 미츠오(堀 光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