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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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히라야마 세이사이
Japanese Title
平山省斎
Text 1815~1890년. 신도다이세이교(神道大成教)의 창시자이고, 온타케교(御嶽教)의 초대관장이다. 분카(文化) 12년, 오슈(奥州) 미하루(三春)의 구로오카 카츠엔사이(黒岡活円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0세 때 에도(江戸)로 나가서 한자, 국학 등을 배웠다. 36세 때 막부의 고부신(小普請, 에도시대 녹봉 2백이상 3천이하의 하타모토, 고케닌 중에 관직이 없는 사람)인 히라야마 겐타로(平山源太郎)의 양자가 되어 가독(家督)을 이었다. 가에이 4년(嘉永,1851)에 오카치메츠케(御徒目付)가 되어, 다음 해부터 막부의 외교문제를 처리했다. 안세이 6년(安政,1859), 쇼군(将軍)의 후계문제와 연관되었다하여 한 때 고후(甲府)로 좌천되었다. 분큐 2년(文久,1862), 죄를 용서받고 에도로 돌아갔다. 예전의 외교수완을 인정받아 하코다테부교(箱館奉行) 지배조두(支配組頭)가 되었다. 게이오 2년(慶応, 1866)에는 외국부교(外国奉行)에 임했다. 메이지유신 후, 주전파(主戦派) 막부유신으로 여겨져 오랫동안 칩거생활을 하게 되고, 시즈오카(静岡)로 옮겨서는 중국학(漢学) 학원을 열었다. 그러나 메이지 3년(明治,1870)에는 자유의 몸이 되고, 5년에는 교도직(教導職)이 되었다. 12년에는 교도직 최고위인 대교정(大教正)이 되었다. 6년에 무사시이치노미야(武蔵一宮)의 히카와(氷川)신사의 다이구지(大宮司), 8년에는 히에(日枝)신사의 사관(祠官)이 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신도를 중심으로 한 국민교화의 필요를 느끼고, 12년에 다이세이(大成)교회를 결성했다. 15년에 이것이 신도다이세이파로 일파독립하자 초대관장이 되었다. 또 한 때 온타케교의 초대관장도 겸했다. 그러나 메이지 23년, 교파의 조직이 충분히 만들어지기 전에 사망했다. 향년76세. 저서로 『本教真訣』, 『修道真法』 등이 있다. ➠신도타이세이교(神道大成教)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