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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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후지이 타카나오
Japanese Title
藤井高尚
Text 1764~1840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사관(祠官), 국학자이다. 통칭은 오젠(小膳), 호는 마츠노야(松の舎), 쇼사이(松斎)이다. 메이와(明和) 원년 빗츄국(備中国) 카요군(賀陽郡) 미야우치(宮内, 현재 오카야마시岡山市)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기비츠신사(吉備津神社)의 사두(社頭)로 근무한 후지이 타카히사(藤井高久)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사카오리궁(酒折宮) 사관인 오카 타메나가(岡為長)의 딸 고하루(小春)이다. 아버지와 그의 스승인 도가노이 잇시츠(栂井一室)에게 와카(和歌)의 입문을 배우고, 빗츄 가사오카(笠岡) 고노시마천신(神島天神)의 사관인 고데라 키요사키(小寺清先)에게 일본학과 중국학을 배웠다. 간세이 5년(寛政,1793)에 상경했을 때 하시모토 츠네스케(橋本経亮)를 알게 되고, 그것을 인연으로 마츠자카(松坂)의 스즈야(鈴屋)를 방문하고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에게 입문했다. 귀국한 후에도 서신을 통해 노리나가의 지도를 받는 한편, 34세경에는 신관을 이어받아 신관으로서는 요시다가(吉田家)를 따랐다. 간세이 11년, 장군가(将軍家)에 신년의 하사언상(賀詞言上)과 요시다가를 통한 관위수령(官位受領, 従五位長門守)의 여행 도중에 스즈야를 다시 방문하고, 노리나가의 칠순잔치에 참석했다. 중고(中古)문학의 주석과 의고문(擬古文)의 명수로 알려졌으며, 노리나가가 타계한 후에도 스즈야 문인의 중심 인물의 한사람으로서 활약했다. 동문으로는 교토의 서사(書肆)경영자이기도 했던 기도 치타테(城戸千楯,1778~1845)와 친하여 치타테 밑에서 저작을 간행했고, 때때로 교토에 가서 치타테의 학사(学舎)인 누데노야(鐸屋)에서 강의를 담당하는 등 긴밀한 관계였다. 그러나 치타테가 심하게 공격하고 있던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와도 교우가 있어서 아츠타네의 사상에 대해서도 이해를 보였다. 신도의 보필로 유교와 불교의 역할을 평가하는 점 등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된다. 타카나오 자신도 오사카(大阪)에 국학학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세이 8년(文政,1825) 장남이 세상을 떠나 신사 집안(社家)의 두직(頭職)에 복귀할 수 밖에 없어서 계획을 단념했다. 시코쿠(四国)나 교토・오사카의 출강을 하면서 기몬(義門)과 나리아이 오에(業合大枝), 시미즈 노부아키(清水宣昭)의 제자들을 양성했다. 덴포 6년(天保,1835) 요시다가로부터 삼천경레이진고(三寸鏡霊神号)를 받았다. 덴포11년에 사망, 향년77세. 저서는 『松屋文集』, 『松屋文後集』, 『伊勢物語新釈』, 『三のしるべ』, 『松の落葉』, 『大祓詞後釈』, 『神の御陰の日記』 등이 있다.
모리 미즈에(森 瑞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