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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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미칸나기 키요나오
Japanese Title
御巫清直
Text 1812~1894년. 막부말부터 메이지시대에 걸친 신관, 국학자이다. 시즈마(志津摩), 쇼쇼(尚書)라 불리고, 호는 보엔(棒園)이다. 분카(文化) 9년 2월 15일에 이세국(伊勢国) 야마다(山田)의 스가하라 미츠모토(杉原光基)의 장남으로 태어나, 나중에 미칸나기 키요토미(御巫清富)의 양자가 되고 미칸나기 가문을 이었다. 덴포 9년(天保,1838)의 간나메사이달(神嘗祭月), 긴 시간동안 중단되었던 외궁 미칸나기우친직(御巫内人職)에 임명되어, 여러 제전(祭典)의 슈바츠쇼야쿠(修祓所役)로 근무했다. 가에이(嘉永) 연간의 식년천궁(式年遷宮) 때에 궁청(宮庁)에 『山口祭勘文』를 올리고 고의(古儀)부흥을 이루고, 신노미하시라봉건(心御柱奉建)의 비의(秘儀), 센교(遷御)의 게이메이쇼야쿠(鶏鳴所役)를 봉임했다. 게이오(慶応)초 간나메이사이의 폐전(廃典)재흥을 목표로 『二宮由貴供具弁正』, 『神嘗祭御遊考実』을 저술하고 고의고증에 노력하여, 메이지 2년(1869)의 식년천궁에는 『玉垣荒垣并藩垣勘文』를 지어, 조제(造制)의 옛 모습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4년의 신궁 개혁 때에 위기(位記)를 반상하고, 오기촌(小木村)에 귀농했다. 구리타 히로시(栗田寛)・고스기 스기무라(小杉慍邨)의 권유로 한때 교부성(教部省)에 출사했지만, 12년 봄부터 신궁교원(神宮校院)의 일등교감이 되어, 15년에는 신궁네기(神宮禰宜)에 추거되었다. 신궁고증학의 태두로서 제사, 전사(殿舎), 직제(職制), 신령(神領), 전적(典籍) 등에 관한 저서는 백수십부에 달한다. 메이지 27년에 사망, 향년 83세. 메이지 38년, 메이지 천황의 신궁 참배 때에, 귀족에게 사이시료(祭粢料)가 하사되었다. 주된 저서인 『太神宮本記帰正鈔』는 40년에 걸친 『倭姫命世記』의 연구성과이고, 『神代本記』유문(遺文)이야말로 세기(世記)구성의 기초라고 상세하게 논구(論究)한 것이다. 그 외 『伊勢式内社検録』, 『御饌殿事類鈔』, 『喪儀類証』 등 저서는 많으며, 주요한 것은 『神宮神事考証』3권에 수록되어 있다. 또 그의 저서 1만부 다이조문고(退蔵文庫) 구장본(旧蔵本)으로 신궁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나카니시 마사유키(中西正幸)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