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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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야노 하루미치
Japanese Title
矢野玄道
Text 1823~1887년. 막부말 메이지(明治) 전기의 히라타파 국학자이다. 이요(伊予)의 오즈번사(大洲藩士)인 야노 미치마사(矢野道正)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소년기부터 공부를 좋아했고, 고카 2년(弘化,1845)에 교토(京都)에 가서 히가시야마순정서원(東山順政書院)에서 배웠다. 또 반 노부토모(伴信友)에게 고증학을 사사받고, 다음 해 에도(江戸)로 가서 히라타가(平田家)에 입문했다. 가에이 4년(嘉永,1851) 다시 교토로 가고, 그 이후 메이지 2년(明治,1869)까지 교토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분큐 2년(文久,1862)에 진기하쿠(神祇伯)의 시라카와가(白川家)의 학사(学師), 게이오 3년(慶応,1867)에 요시다가(吉田家)의 학두가 되었다. 왕정복고 때에는 『献欣詹語』를 집필, 히라타파 국학자의 입장에서 가장 체계적인 국가구상을 명백히 했다. 신정부에서 우선 내국사무국 권판사, 이어서 황학소고요가카리(皇学所御用係) 대학중박사(大學中博士)가 되어, 국학 중심의 교육체제 수립을 위해 한학파와 심하게 대립했다. 메이지 4년 3월, 마루야마 사쿠라(丸山作楽), 가도다 타다유키(角田忠行), 곤다 나오스케(権田直助) 등과 함께 국사범(国事犯)으로 구류되어 3년동안 귀향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10년 수사관어요가카리(修史館御用掛), 다음 해 관내성 어요가카리가 되고, 15년에는 신설된 황전구강소(皇典講究所)의 초대 문학부장이 되었다. 19년, 히라타가에서 위탁받았던 속수(続修)사업을 끝냈다. 20년 5월 19일에 사망했다. 향년 65세. 저서에 『神典翼』, 『皇典翼』, 『天璽畏言』, 『八十隈手』, 『正保野史』, 『本教学柱』 등이 있다.
다케다 히데아키(武田秀章)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

야노 하루미치(고쿠가쿠인國學院대학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