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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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요시다 카네미
Japanese Title
吉田兼見
Text 1535~1610년.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의 요시다(吉田)신도가의 당주이다. 덴분(天文) 4년, 요시다 카네미기(吉田兼右)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슌(梵舜)은 제자에 해당된다. 처음 이름은 카네야스(兼和), 나중에 카네미(兼見)로 개명했다. 지쥬(侍従), 진기다이후(神祇大副), 사에몬노카미(左衛門督)를 역임, 종이위(従二位)에 올랐다.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나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접근하여 요시다신도의 세력확대에 노력했고, 특히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1534~1610)와는 친분이 깊었다(후지타카의 어머니는 카네미의 숙모였고, 나중에 그 딸이 카네미의 손자 카네히데兼英의 부인이 되었다). 덴쇼 18년(天正,1590), 요시다산(吉田山)의 사이죠쇼(斎場所) 내에 진기관(神祇官) 핫신덴(八神殿)의 재흥을 재허받아 20석을 받았다. 이것이 근세의 진기관대(神祇官代)의 시초가 되고, 사이죠쇼를 궁중제사 속에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본슌과 함께 도요쿠니샤(豊国社, 현재 도요쿠니신사) 창립에 진력을 다했으며, 손자인 카네요리가 구지(宮司)가 되었다. 카네미는 신도가로서의 독자성은 부족하고 대체로 선설(先説)을 조술(祖述)하기에 그쳤지만, 정치적인 활동으로 근세 이후의 진기장상(神祇長上) 요시다가의 지위를 확정적인 것으로 한 것은 그의 공적일 것이다. 게이쵸(慶長) 15년 9월 2일에 사망했다. 향년 76세. 저서에는 『神道大意』 등이 있다. 또 일기 『兼見卿記』는 아즈치모모야마시대의 정치상황을 자세하게 전하는 자료이다.
이토 사토시(伊藤 聡)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