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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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テゴリー1: 제8부 유파・교단과 인물 (第8部 流派・教団と人物)
カテゴリー2: 인물(人物)
Title
요시무라 마사모치
Japanese Title
芳村正秉
Text 1839~1915년. 신슈교(神習教)의 교조이다. 덴포(天保) 10년 9월19일, 미마사카(美作,현재 오카야마현岡山県)의 무사 요시무라 다이지(芳村泰治)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마사모치는 난법(蘭法)의 의학을 배웠고, 즈야마번(津山藩)의 어전의(後典医)에 종사했다. 마사모치는 어릴적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경신의 마음도 깊었다고 한다. 10대에 유학, 국학, 한자, 의학을 배웠다. 19세 때 교토(京都)에 가서 고학, 양명학 등도 배웠고, 많은 학자와 교류를 가졌다. 교토에 있을 때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지사들과 교류를 가졌기 때문에, 안세이(安政)의 대옥사건 후, 막사(幕吏)에게 거소를 침략당하여 구라마산(鞍馬山)으로 도망쳤다. 이 때, 자신의 사명은 나카토미(中臣)의 신도를 세상에 알리는 것에 있다고 상기했다. 이윽고, 학문의 시야를 해외 문화로 넓히고, 기독교의 선교사 풀베키와 교류를 가졌다. 게이오(慶応) 연간에 이르러 미마사카로 돌아가서 학원을 차렸다. 메이지유신 후, 메이지 2년(明治,1869)에 상경하여 학원에서 강의를 하거나 했는데, 같은 해 진기관으로 근무했다. 진기성(神祇省), 또 교부성(教部省)에서 근무했는데, 그 정책에 불만을 느껴 얼마가지 않아 교부성을 떠났다. 그 후, 이세신궁에서 근무하는데 그 사이에 후지산(富士山), 온타케산(御嶽山), 후타치산(二荒山)에서 수행했다. 그리고 일종의 신비체험도 했다. 메이지 12년, 신관과 교도직의 분리를 예측하여, 신궁사청을 그만두고 교도직에 전념했다. 다음 해 신슈교(神習教)를 결성, 15년에 이것이 신도신슈교로서 일파 독립하고 관장에 취임했다. 이후, 행법과 가르침을 갖춘 신도의 확립을 목표로 교화활동을 했다. 다이쇼(大正) 4년 1일 21일에 사망. 향년 76세. 저서에 『宇宙之精神』, 『惟神道門答』 등이 있다. ➠신슈교(神習教)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Pronunciation in Japanese/用語音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