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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Title) |
일본어표기 |
본문(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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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훗코신도 |
復古神道 |
순(純)신도, 고도(古道)신도, 국학(国学)신도, 신도복고파(神道復古派)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근세 국학의 신도사상(古道)을 총칭하는 말로서 사용되는 일이 많다. 이 경우는 붓카(仏家)신도나 쥬카(儒家)신도에 비해서 불교・유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신도를 이상으로서 추구하는 사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국학 전체의 신도사상이 아니라 영혼관, 유명관(幽冥観)의 체계화로 종교적 성격이 강해진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의 유파를 이어받고, 왕정복고・존양운동(尊攘運動)을 전개한 국학계신도를 말하는 경우도 많다. 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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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히노오시에 |
日之教 |
신도계신종교이다. 사쿠마 닛코(佐久間日光,1884~1954)가 세운 교단이다. 다이쇼 3년(大正,1914), 효자였던 닛코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사후의 세계, 영혼의 존재, 신의 실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해 8월 4일, 신의 힘을 빛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서, 빛을 차단하는 종이로 사진건판(写真乾板)을 싸서 신전에 바치고 기도, 염원을 한 후에 사진을 현상하자 후지산의 형태가 비취져 있었다고 한다. 닛코는 신이 실재한다는 확신을 갖게되어, 이 날을 교단의 입교일(立教日)로 삼았다. 그 후도 동일한 신령사진이 수 없이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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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히라야마 세이사이 |
平山省斎 |
1815~1890년. 신도다이세이교(神道大成教)의 창시자이고, 온타케교(御嶽教)의 초대관장이다. 분카(文化) 12년, 오슈(奥州) 미하루(三春)의 구로오카 카츠엔사이(黒岡活円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0세 때 에도(江戸)로 나가서 한자, 국학 등을 배웠다. 36세 때 막부의 고부신(小普請, 에도시대 녹봉 2백이상 3천이하의 하타모토, 고케닌 중에 관직이 없는 사람)인 히라야마 겐타로(平山源太郎)의 양자가 되어 가독(家督)을 이었다. 가에이 4년(嘉永,1851)에 오카치메츠케(御徒目付)가 되어, 다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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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히라타 아츠타네 |
平田篤胤 |
이부키노야(気吹乃舎) 등. 가다노 아즈마마로(荷田春満), 가모노 마부치(賀茂真淵),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와 함께 이른바 국학 4대인의 한사람으로 평가된다. 안에이(安永) 5년 8월 24일, 아기타번사(秋田藩士)인 오와다 요시타네(大和田祚胤)의 4남으로 태어나,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간세이 7년(寛政,1795)에 번을 떠나 에도로 나갔고, 12년에 마츠야마번사(松山藩士)인 히라타 토베이(平田藤兵衛)의 양사자(養嗣子)가 되었다. 분카 2년(文化,1805)경부터는 모토오리 하루니와(本居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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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히라타 카네타네 |
平田鉄胤 |
1799~1880년. 막부말 유신기의 국학자이다. 간세이(寛政) 11년 이요국(伊予国) 니이야(新谷)에서 태어났다. 원래 성은 미도리카와(碧川)이다. 분세이 7년(文政,1824),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의 딸인 지에(千枝)와 결혼하고 후계자가 되었다. 분큐 2년(文久,1862) 10월부터 아키타번사(秋田藩士)로서 교토주선(京都周旋)에 종사하고,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의 지우를 얻었다. 신정부에서는 진기사무국(神祇事務局) 판사, 내국사무국 판사에 임했고, 다마마츠 미사오(玉松操), 야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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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히즈키노미야 |
日月之宮 |
신도계신종교이다. 후지모토 토시나리(藤本利成,1930~89)가 교조이다. 쇼와 31년(昭和,1956) 1월 11일 후지모토가 아마테라스스메오미카미(天照皇太御神)로부터 ‘지금까지의 종교는 진실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부터 진실한 종교를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할테니 알아듣거라’라는 천계(天啓)를 받고 이 날을 교단 설립일로 삼았다. 32년, 후지모토의 출생지이기도 한 효고현(兵庫県) 미키시(三木市) 벳쇼쵸(別所町) 다카키(高木)인 현위치에 영지(霊地)가 정해지고, 여기에 총본궁(総本宮)을 두었다. 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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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히카리교회 |
ひかり教会 |
오모토계의 신종교이다. 화가면서 다이쇼 12년(大正,1923)부터 쇼와 10년(昭和,1935)까지 오모토(大本)에서 기관지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오카모토 텐메이(岡本天明,1897~1963)가 창시한 교단이다. 오모토를 떠난 후의 독자적인 종교 활동은 쇼와 19년에 텐메이가 지바현(千葉県) 인바군(印旛郡) 나리타(成田)의 아메노히츠쿠(天之日津久)신사에서 신이 들려, 자동필기(自動書記)를 하게 된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숫자를 중심으로 한 문장으로 ‘후데(一二三)’라고 불리고, 신은 ‘고토바(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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