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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Title) |
일본어표기 |
본문(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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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비카리코하세카이신단 |
ス光光波世界神団 |
오모토(大本), 세카이큐세이교(世界救世教), 마히카리(真光)계통의 신종교이다. 심령극화가(心霊劇画家)인 구로다 미노루(黒田みのる,1928~)가 세카이마히카리분메이교단(世界真光文明教団)의 영향하에서 시작했다. 구로다는 만화가로서 활동하는 한편, 심령연구를 계속하여 심령극화가로서의 입장을 확립했다. 그 후, 세카이마히카리분메이교단의 창시자인 오카다 카우타마(岡田光玉,1910~74)와 만나 그 가르침을 받게 된다. 오카다 카우타마가 사망한 후에는 세카이마히카리분메이교단을 떠나고, 쇼와 5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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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스이카신도 |
垂加神道 |
에도(江戸)시대 초기의 유학자로 신도가(神道家)인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가 창도한 신도. 중세 이래의 각 신도설을 집대성한 유교적 신도로, 국학이 대두할 때까지는 신도의 이론적 지주의 하나로서 구게(公家), 부케(武家)나 신관(神職) 등 구별없이 널리 침투되었다. 안사이는 청년기에 출가했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왔고, 도사번(土佐藩)의 가로(家老)인 노나카 켄잔(野中兼山)의 보호하에, 해남학파(海南学派)의 주자학을 배우고, 나중에 교토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주자학 연구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명나라의 『四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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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카 츠라타네 |
鈴鹿連胤 |
1795~1870년. 에도(江戸)시대 후기부터 막부말에 활동한 신도가, 국학자이다. 간세이(寛政) 7년 교토(京都) 요시다(吉田)의 요시다신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스즈카가(鈴鹿家)는 대대로 요시다 집안의 가로(家老)로 근무하는 집안이었다. 진기노곤노쇼후쿠(神祇権少副) 겸 치쿠젠노카미(筑前守), 요시다신사 곤노아주카리(権預), 요시다가의 가로이다. 어릴적 이름은 고마츠(幸松), 호는 세이사이(誠斎), 쇼세이샤(尚褧舎)라 했다. 아버지는 타카요시(隆芳), 아들은 나가아리(長在), 할아버지는 아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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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스즈키 시게타네 |
鈴木重胤 |
1812~1863년. 막부말기의 국학자이다. 통칭은 가츠자에몬(勝左衛門) 등, 호는 가시노야(橿廼舎), 이츠카시모토(厳橿本) 등이 있다. 시게타네는 실명이다. 분카(文化) 9년 아와지국(淡路国) 츠나군(津名郡) 니이촌(仁井村)에서 대대로 촌장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시게타케(重威)의 가르침으로 어릴적부터 국학에 뜻을 두었고, 오사카(大阪), 고베(神戸)에서 봉공하는 한편 학문에도 힘썼다. 덴포 3년(天保,1832)부터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와는 서신(書信)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고,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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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스쿄마히카리 |
崇教真光 |
오모토(大本)・세카이큐세이교(世界救世教) 계통의 신종교이다. 세카이마히카리분메이교단(世界真光文明教団)의 분파이다. 쇼와 49년(昭和,1974), 세카이마히카리분메이교단의 교조이면서 구제주(救済主)로 불리는 오카다 카우타마(岡田光玉,1901~74)가 사망하자, 제2대 오시에주(教え主)의 계승권을 둘러싸고 세키구치 사카에(関口栄,1909~)와 오카다 케이슈(岡田恵珠,1929~) 사이에 분쟁이 표면화되었다. 이후 관련 분쟁이 이어지다, 52년 세키구치 사카에에게 제2대 계승권이 확정되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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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스쿠이노히카리쿄단 |
救いの光教団 |
세카이큐세이교(世界救世教)계통의 신종교이다. 세카이큐세이교가 쇼와 40년(昭和,1965)대부터 시작한 교단일원화방침에 반발하여 독립을 하는 교단이 연이어 생겼는데 그러한 교단 중의 하나로, 초기부터 유력한 교회의 하나였던 신세이교회(神成教会)를 모체로 한다. 신세이교회의 초대회장인 오누마 테루히코(大沼光彦)는 한 때 총장에도 역임했을 정도의 유력간부로, 그의 아들인 오누마 마사시(大沼昌司)가 37년에 교회장을 계승하고, 규세이교 이사도 역임하고 있었다. 47년 이 교회는 당시 규세이교의 모습이 교조의 이상과는 좀 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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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시다이도 |
四大道 |
신도계신종교이다. 나가하시 야스히코(長橋靖彦,1895~1981)가 교조이다. 야스히코가 쇼와 6년(昭和,1931), 구마모토(熊本)에서 활약하고 있던 영능자(霊能者) 마츠시타 마츠조(松下松蔵,1873~1947)와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설립되었다. 야스히코는 투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또 성명판단, 역학, 인상(人相)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야스히코는 마츠조가 자신이 방문한 이유를 맞추고, 정좌한 채 몸이 공중에 뜨는 체험을 한다. 6년 11월 17일을 신기력개현(神気力開顕)의 날로 한다. 이후, 마츠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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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노 나카바 |
宍野 半 |
1844~1884년. 후소교(扶桑教)를 조직한 인물. 고카(弘化) 원년 9월 9일, 사츠마국(薩摩国) 사츠마군(薩摩郡) 구마노성(隈之城, 현재 가고시마현鹿児島県 센다이시川内市)에서 태어났다. 향사(郷士)인 시시노 큐자에몬(宍野休左衛門)의 둘째아들. 청년시절에 히라타 카네타네(平田鉄胤)의 문인이 되어 국학을 배웠다. 유신 후, 같은 사츠마 출신인 다나카 요리츠네(田中頼庸), 이와시타 마사히라(岩下方平) 밑에서, 그리고 메이지 5년(明治,1872)에는 교부성(教部省)에서 근무했다. 다음 해 교부성을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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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젠샤 |
自然社 |
히토노미치교단계(ひとのみち教団系)의 교단이다. 하시모토 사토미(橋本郷見,1899~1984)가 창시자이다. 하시모토는 메이지 32년(明治,1899) 11월 10일, 가고시마(鹿児島)에서 태어났다. 다이쇼 13년(大正,1924)에 가나다 토쿠미츠(金田徳光) 문하의 미키 토쿠하루(御木徳一)의 제자가 되었다. 토쿠하루가 창설한 진도토쿠미츠교(人道徳光教), 히토노미치교단에서는 준조(准祖)의 한사람으로 활동하였으나, 쇼와 12년(昭和,1937), 교단이 탄압에 의해 해산되었기 때문에, 전쟁 중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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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다 토시하루 |
敷田年治 |
1817~1902년 막부말・메이지시기(明治期)의 국학자이다. 분카(文化) 14년 7월 20일, 부젠국(豊前国) 우사군(宇佐郡) 다무라(田村,현재의 오이타현大分県 우사시宇佐市 오아자大字 시모시키다下敷田)의 후타바야마(二葉山)신사 제관(祠官)인 미야모토 카네츠구(宮本包継)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5년간에 걸친 여러 지방에서의 유학(遊学) 중, 호아시 반리(帆足万里), 와타나베 츠나아키(渡辺綱章)에게 사사받았다. 덴포 10년(天保,1839) 이세국(伊勢国) 욧카이치시(四日市) 히루코(蛭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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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계교단 |
神道系教団 |
근대의 신도계교단은 크게 2종류로 나눠진다. 교파신도(教派神道)와 신도계신종교이다. 교파신도는 일반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를 가리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신도계신종교는 전통적인 신도의 요소를 포함시키거나, 영향을 받거나 하면서도 창시종교적인 색채를 품고 있는 운동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신도13파란, 분파 독립한 순서대로 구로즈미교(黒住教), 신토슈세이파(神道修成派), 이즈모오야시로교(出雲大社教), 후소교(扶桑教), 짓코교(実行教), 신슈교(神習教), 신토타이세이교(神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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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슈세이하 |
神道修成派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神道十三派)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교파신도로 닛타 쿠니테루(新田邦光,1829~1902)가 교조이다. 시코쿠(四国) 아와(阿波)의 무사 아들로 태어난 쿠니테루는 막부말에는 존왕양이(尊王壤夷)적인 정치활동을 하였다. 원래 ‘일본은 신국이고, 일본민족은 신의 자손이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신도를 번창시켜 인민을 교도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지 원년(明治,1868)에 히다(飛騨)지방을 관리하고 있을 때, 참언(讒言)하는 사람이 있어서 한 때 오시번(忍藩, 현재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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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신교 |
神道新教 |
신도계신종교이다. 우니가메 이토(雲丹亀いと,1876~1976)가 교조이다. 이토는 효고현(兵庫県), 간자키군(神崎郡)에서 태어나, 유아기부터 신도신앙에 끌렸다. 그러나 시집간 우니가메가(雲丹亀家)는 정토진종(浄土真宗)의 문인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신(神)신앙을 계속했다. 다이쇼 3년(大正,1914)에 신들려서 세상의 재조명, 재건축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후 이토는 신의 나시로(苗代), 즉 신을 모시는 존재로서 위치하게 된다. 다이쇼부터 쇼와(昭和) 전기에 걸쳐 각지를 순교하며 국난타개(国難打開)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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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신신교 |
神道神心教 |
신도계신종교이다. 교조는 아다치 타쥬로(安達太十郎,1841~1895)이다. 타쥬로는 현재의 효고현(兵庫県) 히카미군(氷上郡)에서 태어났다. 한때 구로즈미교(黒住教)에 입신했었는데, 9년간에 걸친 독자적인 수행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고, 또 메이지 26년(明治,1893)에 영현(霊顕)을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독자적인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교부성(教部省)이 내놓은 교헌3조를 주지(主旨)로 한 교의를 설명했다. 28년에 타쥬로가 사망한 후 사위인 2대 교주 아다치 타츠지로(安達辰次郎,1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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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타이교 |
神道大教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 13파의 하나이다. 원래 행정상의 사정으로 조직화된 교파라는 성격이 강하다. 쇼와 15년(昭和,1940) 이전은 신도본국(神道本局, 정식으로는 신도)이라는 교파명이었다. 신도본국의 성립은 메이지 8년(明治,1885)에 설치된 신도사무국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조직적으로는 일단 다르지만, 신도사무국이 가지고 있던 신도의 각 교회를 통할한다는 성격은 이어졌다. 메이지 18년에 본국은 새로이 신도교규(神道教規)를 제정하고, 다음 해 인가를 받았다. 도쿄(東京)의 스루가다이(駿河台), 이어서 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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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타이세이교 |
神道大成教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교파신도로 히라야마 세이사이(平山省斎,1815~1890)가 조직했다. 세이사이는 오슈미하루(奥州三春,현재 후쿠시마현福島県)의 검도사범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막부의 행정관료 히라야마 겐타로(平山源太郎)의 양자가 되었다. 가독(家督)을 계승하여 막부말에는 외국봉행 등의 직업에도 몸을 담고 있었다. 외국 요인과의 교섭도 수없이 많이 경험했다. 막부말 때에 미소기교(禊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메이지유신 후 곧 종교활동으로 몸을 돌렸다. 주전파(主戦派)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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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텐코쿄 |
神道天行居 |
신도계의 신종교이다. 창시자는 도모키요 요시사네(友清歓真,1880~1952)이다. 도모키요는 다이쇼 7년(大正,1918) 오모토(大本)에 입신하는데, 다음 해에는 의문과 반발을 느끼고 탈퇴, 그 이후 격렬하게 오모토를 공격하게 된다. 시즈오카(静岡)의 나가자와 카츠타테(長沢雄楯)에게 혼다영학(本田霊学)을 배운 후, 다이쇼 9년에 가쿠신회(格神会)를 설립한다. 한 때, 구키 모리타카(九鬼盛隆)와 공동으로 영매(霊媒)에 의한 귀신(帰神)을 왕성하게 집행했다. 다이쇼 10년에 덴코교를 설립. 쇼와 2년(昭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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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레이교 |
神霊教 |
신도계신종교이다. 어릴 때부터 묘한 신력(神力)을 보였던 오즈카 칸이치(大塚寛一,1891~1972)가 아내인 쿠니에(国恵,1906~)의 협력을 얻어, 쇼와 22년(昭和,1947) 2월1일에 개교한 것이 시작이다. 암을 비롯한 난병을 연이어 고쳐나가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 23년에 종교법인령에 의한 종교법인 신레이교가 되었다. 당초는 오사카(大阪) 니시미야(西宮)를 거점으로 했는데, 27년부터 도쿄(東京)에 정기적으로 다니게 되어 29년에는 도쿄 아카사카(赤坂)에 도쿄지부를 개설한다. 또 28년에 종교법인법에 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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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레이카이교단 |
心霊界教団 |
신도계신종교이다. 이시이 레이잔(石井〇山,본명 이와요시岩吉,1884~1958)가 쇼와 7년 (昭和,1932)에 천계(天啓)를 받고 교단을 세운 것이 시작이다. 레이잔은 유소년기부터 신앙심이 깊었고, 어머니의 병을 계기로 신비체험을 하거나 어머니에게 치료를 하거나 했다. 쇼와 11년에는 기관지(『神霊界読本』)를 창간한다. 이 때 이미 도쿄(東京)를 중심으로 많은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종교단체법시대에는 종교결사(宗教結社)로서 신청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쇼와 21년에 종교법인법에 의한 법인, 28년에 종교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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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신리교 |
神理教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교파신도로 교조는 사노 츠네히코(佐野経彦,1834~1906). 츠네히코는 부젠국(豊前国, 현재 후쿠오카현福岡県)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에 니시다 나오카이(西田直養)로부터 국학을 배우고, 막부말에는 황국의도(皇国医道)를 제창하면서 저작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메이지유신 후, 본격적으로 종교활동을 개시했다. 메이지 8년(明治,1875)부터 다음 해에 걸쳐서 종종 꿈에서 개시를 받고 자신의 종교적 사명에 확신을 가졌다. 자택에서 강석을 열었는데 신도들이 늘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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