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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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토 겐치 加藤玄智 1873~1965년. 다이쇼(大正)・쇼와(昭和)시대의 종교학자, 신도학자이다. 메이지(明治) 6년 6월 17일, 도쿄 행정권내의 신종사원(真宗寺院)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철학과를 졸업 후, 육군교수를 거쳐 다이쇼 10년(1921)에 도쿄제국대 조교수로 취임하여 신도강좌를 담당했다. 쇼와 6년(1931)에 고쿠가쿠인(國學院)대학 교수, 그 사이에 다이쇼대학, 고마자와(駒沢)대학, 진구코갓칸(神宮皇学館)대학 등에서 종교학, 신도학, 비교사상 등을 강의했다. 한편 다이쇼 원년에 메이지쇼토쿠...
2 간나가라교 神ながら教 신도계신종교. 미즈노 후사(水野 房,1883~1970)가 교조이다. 미즈노는 메이지 16년(明治,1883) 1월 25일에 히로시마현(広島県)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9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모두가 사산, 조산, 요절을 하였다. 어머니가 고야스관음(子安観音)에게 매일 참배하였더니 열번째 아이로 후사가 태어났다. 17세 때 친구의 권유로 곤코교(金光教) 교회에 가서 신앙에 눈을 떴다. 메이지 33년 친척인 청년과 결혼을 했지만 다음 해 이혼했다. 37년에 재혼하여 그 다음 해 남편의 일로 북경에 가고, 40년에는 대련(大連)으로 이...
3 간나비 神奈備 신이 진좌하는 장소, 특히 신성한 숲이나 산을 말한다. 신이 은둔한다(간나비,神隠)는 뜻으로 미모로(신이 강림한 곳)와도 같은 의미이다. ‘甘南備(간나비)の三輪山は’, ‘神嘗備(간나비)の三諸の神の’, ‘神名備(간나비)の三諸の山に’, ‘石走る甘南備山(간나비)に’ 등, 『만요슈(万葉集)』에서는 모두 미모로노야마(三諸山=三輪山)와 관련되어 사용된다. 『이즈모후도키(出雲風土記)』에서는 神名樋(간나비)山, 神名火(간나비)山라고 썼다. 오우군(意宇郡), 아이카군(秋鹿郡), 다테누이군(楯縫...
4 게이츄 契沖 1640~1701년. 근세 국학을 창시한 인물로 진언종(真言宗)의 승려이다. 간에이(寛永) 17년 세츠국(摂津国) 아마가사키(尼崎)에서 태어났다. 아마가사키성주(尼崎城主)인 아오야마(青山)씨를 모시던 시모카와 모토요시(下川元全)의 차남이다. 아버지는 250석의 녹봉을 받는 관료였지만, 게이츄의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닌(浪人)이 되었다. 게이츄는 7세 때 큰 병에 걸렸지만 꿈에서 텐만천신(天満天神)의 계시를 받아 회복하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11세 때 오사카 이마리(今里)의 묘호사(妙法寺)에 들어가 쇼오 원...
5 게이코인 세이쥰 慶光院清順  ?~1566년. 전국시대의 여승. 이세국(伊勢国) 우지(宇治)의 게이코인(慶光院) 3세이다. 기슈쿠마노(紀州熊野)에서 태어나, 지케이쇼닌(智珪上人)의 법등(法灯)을 이었다. 신궁의 식년천궁(式年遷宮)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한탄하고, 우선 모든 지방에 권진(勧進)해서 덴분 18년(天文,1549)에 우지바시(宇治橋)를 만들었다. 이 공적으로 고나라(後奈良)천황의 유지(綸旨)를 받고, 인호(院号)를 받게 되었다. 이어서 오기마치(正親町)천황의 유지(叡旨)를 받고, 모든 지방의 무사에게 권진하여 자금...
6 게이코인 슈요 慶光院周養  ?~1611년.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의 여승(尼僧)이다. 이세국(伊勢国) 우지(宇治)의 게이코인(慶光院) 4세이다.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신궁이 현저하게 쇠약된 것을 한탄하고, 오기마치(正親町)천황의 명령을 받들어 각국의 권화(勧化)에 힘썼다. 우선 덴쇼 3년(天正,1575)에 내궁의 가전(仮殿) 천궁(遷宮)을 수행했다. 이어서 두 신궁의 정례 천궁(遷宮)의 부흥에 착수하여 여러 지방으로부터 자재를 모집했다. 이 때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로부터 아주 큰 원조를 받았고, 노부나가가 사망하자 도요토미...
7 겐무샤 兼務社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신관이 없으며, 따로 혼무샤(本務社)를 가지고 있는 신관에 의해 관리되는 신사. 신사의 수가 신관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필연적으로 생기는 일이다. 그리고 한 곳의 신사만으로는 경제적인 운영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사정과도 관계가 있다. 원래 신사에는 상주하는 신관이 없었던 적도 있었으며, 겐무샤라는 개념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신사의 관리태세가 정비되는 메이지시대 이후이다. 현재, 신사본청(神社本庁)에 포괄된 신사는 약 7만9천사(社)이고, 신관은 약 2만6백명이다. 한 곳의 신사에 십여명 혹은 그 이상의 신관...
8 고기신도 古義神道 신관(神職)이었던 구와하라 야치오(桑原八千夫,1910~)가 제2차 세계대전후 개창한 교단이다. 구와하라는 쇼와 16년(昭和,1941)에 고쿠가쿠인(国学院)대학을 졸업한 후 오오야마츠미(大山祇)신사의 주전(主典)을 거쳐, 가시마신궁(鹿島神宮)의 네기(禰宜)・가시마국민연성도장(鹿島国民練成道場) 주임이 되고, 이 외 각종 단체의 연성회 강사로서 활약했다. 그러나 전쟁에 패하고, 그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해서 모든 직업을 그만두고, 아마가사키시(尼崎市)에서 대도역자(大道易者,길거리에 가게를 두고 점을...
9 고노 세이조 河野省三 1882~1963년. 메이지(明治)부터 쇼와(昭和)시대에 결쳐서 신관(神職), 신도연구자, 문학박사. 호는 시운(紫雲). 메이지 15년, 사이타마현(埼玉県) 기타사이타마군(北埼玉郡) 기사이쵸(騎西町)의 향사(郷社)인 다마시키(玉敷)신사의 구지(宮司) 로쿠로(禄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메이지 38년(1905) 고쿠가쿠인사범부 국어한문역사과를 졸업하고, 다마시키신사 샤시(社司)가 되었다. 41년 고쿠가쿠인연구과(도의과道義科)를 졸업하고, 다이쇼 7년(大正,1918) 같은 대학 강사・교...
10 고다이인 마하시라 後醍院真柱 1805~1879년. 분카(文化) 2년 국학자의 아들로 가고시마(鹿児島)에서 태어났다. 같은 번의 국학자인 시라오 쿠니하시라(白尾国柱), 핫타 토모노리(八田知紀)와 교류, 덴포(天保) 10년 에도(江戸)에서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에게 입문했다. 덴포 12년(1841) 고반카쿠(小番格) 고다이인 료지(後醍院良次)의 양자가 되었다. 가에이 3년(嘉永,1850), 가고시마번의 내분 ‘다카자키 붕괴(高崎崩れ)’에 말려들어 근신처분을 받았다. 그 후 용서를 받아 안세이 5년(安政,1858) 번교조사관(...
11 고류신도 御流神道 료부(両部)신도에 속하는 신도설로, 고류란 본래 법황(法皇)・법신왕(法親王)의 법류(法流)를 가리키는 말이다. 덧붙이면 도미츠 히로사와류(東密広沢流)의 근본이 되는 여섯개 유파의 하나로 고류(御流,仁和寺御流)가 있는데 이것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여겨진다. 그 호칭이 처음 나온 것은 오닌 26년(応仁,1419)에 편찬된 료헨(良遍)의 『日本書紀第一聞書』에 “산보인 고류(三宝院御流)라고도 하고 혹은 신도라고도 해서 여러 지방에서 사용한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정착한 것은 중세 후기 이후로 보이며, 중세 말기의 저작...
12 고마이누 狛犬 신사의 샤덴(社殿) 앞, 산도(参道) 등에 놓여져 있는 한쌍의 사자모양의 상. 高麗犬, 胡麻犬로도 표기한다. 재질은 돌이 많지만 동, 철, 나무, 도자기류의 것도 있다. 한쌍의 관계는 숫컷, 암컷이 대표적이지만, 한쪽에 뿔이 나 있는 상으로 만든 예도 있다. 또 한쪽이 입을 벌리고 다른 한쪽이 입을 다물고 있는 즉 ‘아운(阿吽)’의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쪽 다 입을 벌린 것도 있다. 그 기원은 이집트와 인도라고 하는데, 일본에 전해진 것은 중국의 당(唐)시대의 것이 전해졌다. 그리고 가마쿠라시대에는 송(宋)나라풍의 것이 새로이 전해져서 이 형식은 가...
13 고모 제전(祭典)에 사용되는 마코모를 실로 짠 깔개를 말한다. 아라고모(荒薦), 마고모(真薦) 등으로도 불린다. 통상, 그 위에 신센안(神饌案)이나 다마구시안(玉串案)을 둔다. 그리고 센교(遷御) 때의 통로에도 사용된다. 『신토묘모쿠루이쥬쇼(神道名目類聚抄)』에는 ‘아라고모, 스고모(食薦), 야츠노고모(八封薦), 신사(神事)에서 깔개로 사용되는 고모이다’라고 되어있다. 그 위에 신센(神饌)을 놓는 경우는 스고모, 그리고 다이죠사이(大嘗祭)와 같은 때에 신센을 바치기 위해서 이용된 것을 가미노스고모(神食薦), 또 ...
14 고소코타이진구아마츠교 皇祖皇太神宮天津教 신도계신종교이다. 다케우치 키요마로(竹内巨麿,1874~1965)가 개창한 교단이다. 도야마현(富山県) 네이군(婦負郡) 신메이촌(神明村)의 다케우치 집안(竹内家)은, 태고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통보(神統譜)와 진무(神武)천황 이전의 고대왕조 전승 등이 기록되어 있는 고문서(‘竹内文書’라 부른다)나 신포(神宝)로 여겨지는 고기물(古器物)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키요마로는 메이지 25년(明治,1892)에 이것들을 가지고 상경했다. 그는 온타케교(御嶽教)에 입신하여 거기서 신도의 교리나 의식을 배우고, 집안...
15 고신도센포교 古神道仙法教 신도계신종교이다. 마사이 요시미츠(正井頎益,1907~70)가 창시자이다.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고 하는 고신도학(古神道学)과의 연관을 주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츠타네의 신학에 기반을 두면서 독자적인 영통학(霊統学)과 신법도술금염법(神法道術禁厭法)을 확립한 것이 미야지 스이이(宮地水位,가키와堅磐,1852~1904)이다. 이 스이이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요시미츠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20대 후반부터 신도연구를 하게 되었다. 패전하의 일본인이 퇴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우려하여,...
16 고코쿠신사 護国神社 막부말 유신기이래,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전몰자들을 기리는 신사. 쇼콘샤(招魂社)을 전신으로 한다. 쇼와 14년(昭和,1939), 내무성(内務省)령에 의해 메이지이후에 설립된 쇼콘샤 백수십개를 전부 고코쿠신사로 개칭하게 되었다. 내무대신이 지정하는 지정고코쿠신사와 그외의 지정외고코쿠신사로 나눠졌다. 지정고코쿠신사는 원칙적으로 하나의 부현에 일사(一社)로 정하고, 제신(祭神)의 범위는 신사가 소재하는 도부현의 구역으로 정했다. 샤시(社司) 한명과 샤쇼(社掌) 몇명을 두었다. 지정외고코쿠신사에는 샤쇼를 몇명 ...
17 고헤이 御幣 헤이하쿠(幣帛)의 한 종류이며 헤이소쿠(幣束)라고도 한다. 옛날에 고헤이는 ‘미테구라’의 의미로 헤이하쿠와 같은 뜻이었지만, 점차 현재와 같이 좁은 의미로 이용되게 되었다. 금, 은 혹은 백색, 오색의 종이를 대나무 또는 나무로 만든 헤이구시(幣串)에 끼운 것. 옛날에는 천을 바칠 경우에 대부분은 꼬치에 끼워서 바쳤는데, 오늘날의 고헤이는 그것이 변화한 것이다. 그 형태도 처음에는 사각형의 종이를 사용했지만, 나중에 양옆에 시데(紙垂)를 붙이게 되었다. 원래 신에게 바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샤덴(社殿)의 안쪽 깊은 곳에 세워서 신령이 머무...
18 곤다 나오스케 権田直助 1809~1887년. 막부말 메이지(明治) 전기의 히라타파(平田派) 국학자이다. 분카(文化) 6년, 무사시국(武蔵国) 이루마군(入間郡)에서 의사인 곤다 나오노리(権田直教)의 아들로 태어났다. 19세 때 에도(江戸)에 유학(遊学)하여 막부의 의관(医官) 노마코슌인(野間広春院)에게 의학을, 아사카 시게노부(安積重信)에게 유학을 배운 후 고향으로 돌아가 병원을 개업했다. 덴포 8년(天保,1837)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에게 입문, 신도를 기초로 한 ‘황조고의도(皇朝古医道)’를 외우기에 이르렀다. 분큐...
19 곤코교 金光教 신도계신종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의 하나이다. 곤코다이진(金光大神,1814~83)이 교조이다. 곤코다이진은 빗츄국(備中国)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계속되는 재난과 자신의 병으로 얻은 경험속에서 덴치카네노카미(天地金乃神)로 불리는 신에 대한 신앙을 확립했다. 나중에 ‘도리츠기(取次)’라는 종교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곤코다이진이 사망한 후 제자인 사토 요시오(佐藤範雄) 등에 의해 포교합법화 운동이 추진되고 메이지 18년(明治,1885년)에 신도빗츄사무분국소속 신도콘코교회로서 공인되었다. ...
20 곤코다이진 金光大神 1814~1883년. 곤코교(金光教)의 교조이다. 어릴적 이름은 겐시치(原七), 아카자와 분지(赤沢文治)로 표기될 때도 있다. 분카 11년(文化,1814) 빗츄국(備中国) 우라미촌(占見村, 현재 오카야마현岡山県 곤고쵸金光町)의 농가, 간토리(香取)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2세 때 오타니촌(大谷村)의 가와테가문(川手家)의 양자가 되어 분지로(文治郎)라고 했다. 출세번성(出世繁盛)을 기원하고 가업에 진력을 다 하여 사회적으로도 신용을 얻었지만, 세차례 자택 건축을 할 때에 가족을 연이어 잃어서 금신(金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