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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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시노키 스케유키 梨木祐之 1659~1723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스이카신도가(垂加神道家)이다. 호는 게이사이(桂斎). 시호는 젠쥬인(善受院). 통칭은 사쿄곤다유(左京権大夫). 가모씨(鴨氏)라고도 했다. 교토(京都) 가모미오야(鴨御祖)신사의 신관(神官). 종삼위(従三位)인 스케유키(祐永)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같은 신사의 신관이 되어, 나중에 정삼위(正三位)까지 올랐다. 와카(和歌)를 잘 지어 오기마치 킨미치(正親町公道)의 추거(推挙)를 받을 정도였다. 국사에도 정통하여 『日本逸史』40권을 저술했다. ...
2 나이진・게진 内陣・外陣 신사의 혼덴(本殿)에서 가장 안쪽에 있고, 신타이(神体) 혹은 미타마시로(御霊代)를 봉안하는 부분이 나이진이고, 그 바깥쪽 부분이 게진이다. 문, 단사, 방의 형상 혹은 기둥 부분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 보통이다. 단, 혼덴이 3개로 구분되고 있는 경우는 안쪽에서 순서대로 나이나이진(内内陣)・나이진・게진, 또는 나이진・츄진(中陣)・게진으로 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혼덴이 작아서 한 칸일 경우에는 혼덴 안의 전체를 나이진이라고 칭한다. 원래 불교용어에서 온 것으로 본존을 모시는 건물 안쪽 부분이 나이진, 그 이외를 게진(또는 예당礼堂)이라...
3 나카니시 나오카타 中西直方 1634~1709년. 에도(江戸)시대 초기의 신궁(神宮)학자이다. 간에이(寛永) 11년에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즈네타메(常為), 나중에 쇼신(小進), 나오카타(直方)로 개명하고, 호는 라모시(羅茂子)이다. 데구치 노부요시(出口延佳)의 고코당(講古堂)에서 배웠는데, 간분 10년(寛文, 1670)의 오하라이타이마(御祓大麻)의 명문(銘文)에 ‘황(皇)’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시비를 문제삼은 어불명론일건(御祓銘論一件)에 연좌되어, 성역의 바깥으로 추방되어 유랑하는 인생을 보냈다. 엔포 원년(延宝...
4 나카니시 노부요시 中西信慶 1631~1699년. 에도(江戸)시대 초기의 신궁학자이다. 이세국(伊勢国) 야마다(山田)에서 태어났으며, 외궁쿠죠오우친도(外宮宮掌大内人)에서 근무했다. 처음 이름은 노부요시(信吉), 나중에 노부요시(信慶)로 바꿨다. 통칭은 야스에몽(易右衛門). 게이안 원년(慶安,1648)에 데구치 노부요시(出口延佳)의 제창에 따라 미야자키문고(宮崎文庫)가 창설되자, 노부요시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 신도론의 핵심은 『御鎮座本紀鈔』5권, 『御鎮座伝記鈔』5권, 『御鎮座次第記鈔』2권, 『倭姫命世紀鈔』2권 등...
5 나카야마 미키 中山みき 1798~1887년. 덴리교(天理教)의 교조이다. 교단에서는 ‘오야사마’라고 부른다. 간세이(寛政) 10년 4월 18일, 야마토국(大和国) 야마베군(山辺郡) 산마이덴촌(三昧田村)에서 오쇼야(大庄屋)의 마에카와 마사노부(前川正信)와 기누(きぬ)의 장녀로 태어났다. 13세에 같은 군의 쇼야시키촌(庄屋敷村)의 나카야마 젠베이(中山善兵衛)의 아내가 되었다. 덴포 9년(天保,1838), 3일간 심하게 신들림을 체험했다. 나중에 교단에서는 미키가 ‘신의 야시로(신이 깃드는 곳)’로 정해진 10월 26일을 입교...
6 나카야마 타다야스 中山忠能 1809~1888년. 막부말유신기의 왕정복고파 구게(公家). 메이지(明治)천황의 생모인 나카야마 요시코(中山慶子)의 아버지. 분카(文化) 6년, 곤다이나곤(権大納言)인 나카야마 타다요리(中山忠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분세이 4년 (文政,1821)에 사코노에노곤쇼쇼(左近衛権少将), 덴포 11년(天保,1840)에 산기(参議), 고카 원년(弘化,1844)에 곤츄나곤(権中納言), 고카 4년에 곤다이나곤(権大納言), 가에이 원년(嘉永,1848)에 정이위(正二位)에 임명되었다. 가에이 5년에...
7 나카에 토쥬 中江藤樹 1608~1648년. 에도(江戸)시대 전기의 유학자이다. 호는 고레나가(惟命). 휘는 겐(源). 통칭은 요에몽(与右衛門)이다. 오미국(近江国) 다카시마군(高島郡, 현재 시가현滋賀県 다카시마군高島郡)출신이다. 그의 고결한 성격 때문에 나중에 ‘오미성인(近江聖人)’으로 불렸다. 토쥬가 그의 독특한 신도관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31세 이후의 일로 만년에 이른다. 우선 31세인 간에이 15년(寛永,1638)에 『詩経』과 『尚書』에서 설명하는 ‘황상제(皇上帝)’에 주목하고 『原人』, 『持敬図説』를 집필하여 초...
8 니기테 和幣 헤이하쿠(幣帛)의 한 종류로 신에게 바치는 하얀 천을 말한다. 짜여져 있지 않은 마나 목면, 견 등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니기타헤’라고도 하고 和妙라고도 표기한다. 『고지키(古事記)』의 진다이마키(神代巻)에는 아마테라스가 아메노이와야도(天石屋戸)에 은둔해 있을 때 아메노코야네노미코토(天児屋命)가 여러가지 제구(祭具)를 준비했는데, 그 중에 사카키(榊)의 아래 가지에 시라니기테(白和幣)・아오니기테(青和幣) 달았다고 되어있다. 시라니기테는 목면으로 짠 베, 그리고 아오니기테(青和幣)는 마포를 말하는 것으로...
9 니노미야 손토쿠 二宮尊徳 1787~1856년. 막부말의 농정가(農政家)・사상가이다. 덴메이(天明) 7년 7월, 사가미국(相模国) 아시가라카미군(足柄上郡) 가야마촌(栢山村, 현 오다와라시小田原市)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긴지로(金次郎, 본래는 金治郎), 다카노리(尊徳)는 막부에 등용된 뒤의 휘자(諱字)인데, 후세에 음독으로 통용되었다. 홍수와 부모의 요절로 인해 극도의 빈곤과 고난을 겪었지만, 24세때에 일가를 다시 일으키고 36세 때에 번주인 오쿠보 타다자네(大久保忠真)에게 기용되어 오다와라번의 분가 지행소(知行所)인 시...
10 니시다 나오카이 西田直養 1793~1865년. 국학자이다. 간세이(寛政) 5년에 고쿠라번사(小倉藩士)인 다카하시 모토요시(高橋元義)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나중에 니시다 나오아키(西田直享)의 양자가 되었다. 어릴적 이름은 쇼자부로(庄三郎), 호는 고넨(浩然). 36세때 간죠부교(勘定奉行)가 되고, 그 후에 마치부교(町奉行), 지샤부교토리하카라이(寺社奉行取計)가 되는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먼저 한학을 배웠지만, 점차 국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당초는 주로 와카(和歌) 등을 배웠지만, 에도(江戸)에서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
11 닛코교 日光教 신도계신종교이다. 데라구치 코지로(寺口光次郎,1881~1960)가 교조이다. 코지로는 22세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부터 신앙생활로 들어가 메이지 36년(明治,1903) 3월, 우부스나가미(産土神) 모즈하치만다이보사츠(百舌八幡大菩薩)의 신의(神意)를 감득해서 나가오코(永尾講)를 열었다. 코지로가 하는 말이 잘 맞는다는 평판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신의 계시를 전하거나 병고치기 기도를 하였는데, 이것들은 현재에도 교단의 중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다이쇼 7년(大正,1918)에 이 지역에서 일어난...
12 닛타 쿠니테루 新田邦光 1829~1902년. 신도슈세이파(神道修成派)의 교조이다. 원래는 다케자와 켄자부로(竹沢寛三郎)라 했다. 분세이(文政) 12년 12월 5일, 도쿠시마번사(徳島藩士)인 다케자와 히쇼(竹沢斐章)・소메(曽米)의 세번째 아들로 아와국(阿波)에서 태어났다. 7세의 나이에 논어를 읽었다고 전해진다. 9세 때 가전(家伝)의 책을 읽고 자신의 선조가 닛타라는 것을 알게 되어 왕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가졌다고 한다. 청년기에는 산음・산양(山陰・山陽)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지들과 교류했다. 가에이 원년(嘉永,1...
13 다나카 요리츠네 田中頼庸 1836~1897년. 막부말, 메이지(明治) 전기의 국학자이다. 덴포(天保) 7년, 사츠마번사(薩摩藩士) 다나카 시로자에몬(田中四郎左衛門)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 때 정쟁(政争)에 연좌되어 오시마(大島)로 유배되었다. 메이지 초년, 번교조사관국학국초강(藩校造士館国学局初講)・신사봉행(神社奉行)을 겸했고, 메이지 4년(1871), 신대삼릉토리시라베(神代三陵取調)로 임해졌다. 다음 해부터 진기성(神祇省)에 출사했고 교부대록(教部大録)를 거쳐 메이지 7년 진구다이구지(神宮大宮司), 10년...
14 다나카 요시토 田中義能 1872~1946년. 신도학자, 문학박사이다. 메이지(明治) 5년 9월 12일, 야마구치현(山口県) 구카군(玖珂郡) 요네카와촌(米川)에서 태어났다. 36년(1903)에 도쿄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바로 고쿠가쿠인(國學院)대학 강사가 되었다. 제오(第五)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은 후, 다이쇼(大正) 10년(1922)에 도쿄제국대학 조교수가 되어 신도강좌를 담당했다. 다음 해, 고쿠가쿠인대학 교수가 되어 신도・국민도덕 등을 강의했다. 신도철학과 교파신도의 연구 등으로 알려져 있다. 쇼와 원년(昭和,1...
15 다니 시게토오 谷 重遠 1663~1718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스이카신도가(垂加神道家), 유학자이다. 성은 미와(大神), 통칭은 단자부로(丹三郎), 호는 진잔(奏山)이다. 간분(寛文) 3년 3월 11일, 도사국(土佐国) 나가오카군(長岡郡) 야하타촌(八幡村)에서 하치만궁(八番宮)의 신관(神職) 다니 칸베이 시게모토(谷神兵衛重元)의 3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났다. 17세 때 상경하여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에게 사사받았다. 안사이가 사망한 후에는 그 제자인 아사미 케이사이(浅見絧斎)에게...
16 다니가와 코토스가 谷川士清 1709~1776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국학자이다. 자는 고스케(公介). 이름은 노보루(昇). 통칭은 요쥰(養順). 호는 단사이(淡斎) 등 다수이다. 호에이(宝永) 6년, 이세국(伊勢国) 아메군(安濃郡, 현재의 츠시津市)에서 고토쿠당(恒徳堂)이라는 가호(家号)의 의사집안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의학을 배우기 위해서 교토에 갔지만, 거기서 마츠오카 겐타츠(松岡玄達), 마츠오카 유엔(松岡雄淵), 다마키 마사히데(玉木正英) 등에게 사사받고, 교호 17년(享保,1732)에 스이카신도의 허가장(許状)...
17 다니모리 요시오미 谷森善臣 1817~1911년. 막부말・메이지(明治)시대의 고증파(考証派) 국학자이다. 분카(文化) 14년 교토(京都)에서 태어났다. 반노부토모(伴信友)에 입문해서 고증학을 배웠고, 특히 산릉(山陵)연구 분야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릉연구의 태두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가에이(嘉永)이래, 학습원(学習院)대학에서 국학을 강의했고, 분큐산릉수보(文久山陵修補)사업에서는 산릉봉행의 도다 타다유키(戸田忠至)의 자문역을 맡아 능소소재고증(陵所所在考証), 수보(修補)양식 등을 지도하고, 능묘제사의 부흥에 중심적인 ...
18 다다 요시토시 多田義俊 1698~1750년. 근세 중기의 국학자, 고실가(故實家, 고증학자), 우키요조시(浮世草子)의 작자이다. 생년은 통설로는 겐로쿠 11년(元禄,1698)이지만, 7, 8, 9년일 가능성도 있다. 본래 성은 미나모토(源). 별성은 가츠라(桂). 이름은 마사나카(政仲), 요시토시(義俊) 등. 통칭은 쇼겐(将監), 효부(兵部) 등. 호는 슌토(春塘) 등 다수이다. 셋슈(摂州) 다다(多田, 현 효고현兵庫県 가와니시시川西市)의 사람이다. 도리야마 시겐(鳥山芝軒)에게 한학을 배웠고, 시바야마 히로토요(芝山広豊), 소...
19 다마가키 玉垣 신사 또는 신성한 영역, 혹은 황거(皇居)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玉籬, 玉檣로 표기하기도 한다. 수목으로 둘러싸는 시바가키(柴垣)가 옛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석조, 목조, 최근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것 등이 있다. 재료・형상에 따라서 이타타마가키(板玉垣), 구로키타마가키(黒木玉垣), 스카시가키(透垣) 등 여러가지 호칭이 있다. 미즈가키(瑞垣), 아라가키(荒垣)와 혼용되는 일도 많지만, 울타리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가장 안쪽의 것을 미즈가키(瑞垣), 그 다음 바깥쪽 것을 다마가키, 혹은 ...
20 다마구시 玉串 사카키(榊)의 가지에 유우(木綿,아사오(麻苧))나 시데(紙垂)를 단 것으로, 신관(神職)이나 참배자 등이 신전(神前)에서 배례할 때에 바친다. 다마구시의 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원래 신령이 깃드는 요리시로(依代)였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고지키(古事記)』에 의하면, 이호츠노마사카키(五百津真賢木)에 구슬, 거울, 시라니기테(白和幣)・아오니기테(青和幣)를 달아, 바위굴에 숨어있던 아마테라스를 불러냈다는 기술도 고대의 다마구시의 묘사라고 한다. 국학자들은 어의에 대해서 여러모로 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