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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Title) |
일본어표기 |
본문(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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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마츠 미사오 |
玉松 操 |
1810~1872년. 막부말 유신기의 국학자이다. 분카(文化) 7년, 산기지쥬(参議侍従)인 야마모토 키미히로(山本公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8세 때 다이고무료인(醍醐無量院)에서 출가하고(得度), 나중에 대승도법인(大僧都法印)에 취임되었다. 하지만 30세에 하산, 환속하여 야마모토 키켄(山本毅軒)이라고 개명하고, 나중에 다시 다마마츠 미사오로 개명했다. 처음에 오쿠니 타카마사(大国隆正)에게 국학을 배웠다. 그리고 기에이(嘉永)・안세이기(安政期)에는 이즈미(和泉)에게, 분큐(文久) 겐지기(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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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미츠신사 |
玉光神社 |
신도계신종교이다. 영능자인 모토야마 키누에(本山キヌエ,1909~74)가 창시자이다. 쇼와 7년(昭和,1932), 키누에는 생활고로 인해 쇼도섬(小豆島)의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몸을 던지기 전의 돌 위로 바람을 타고 내려 앉는다. 그리고 ‘나는 아마츠카미타마미츠오미카미(天津神玉光大神)이다. 지금부터 5년 후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싸움이 있다. 그것을 제도하기 위해서 내려온 신이다. 너의 어머니의 신앙심과 너의 효양에 힘 입어 너의 생명을 구하니 지금부터 너는 나의 대리인이 되어 이 세상을 구하거라. 쇼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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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키 마사히데 |
玉木正英 |
1670~1736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신도가이다. 교토(京都) 우메노미야타이샤(梅宮大社)의 신관(神職). 통칭은 고스케(幸助), 효고(兵庫). 호는 이사이(葦斎) 등. 레이샤고(霊社号)는 이히레레이샤(五鰭霊社)이다. 간분(寛文) 10년 12월 7일에 태어났다. 겐로쿠 4년(元禄,1691) 스스키다 모치사다(薄田以貞)로부터 히키메(蟇目), 메이겐(鳴弦) 등의 비의행법(秘儀行法)을 전수받아 스스로 다치바나 모로에(橘諸兄) 전래의 깃케(橘家)신도라 칭했다. 그 후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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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
山車 |
신사의 제례 때, 산, 호코(鉾), 인형, 꽃 등 여러가지 장식을 달고, 하야시(囃子)를 연주하며 끌거나 짊어지거나 하는 야타이(屋台)를 말한다. 다시라는 말은 중심을 이루는 호코의 윗 부분이 튀어나온 장식의 ‘다시(出し)’, 즉 히게코(髭籠)의 대나무로 짜서 만든 것의 끝에 남아있는 부분의 명칭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다시는 헤이안(平安)시대의 다이죠사이(大嘗祭) 때에 끌었던 시루시노야마(標山)에서 유래되었고, 원래 신령이 머무는 것을 표시한 것이었지만, 후세에 장식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지면서 하야시의 음악, 연주가 더해져 떠들썩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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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레이도 |
太霊道 |
신도계신종교이다. 다나카 모리헤이(田中守平,1884~1928)가 창시자이다. 모리헤이는 4개월동안 산속에서 지내며 단식을 한 결과 ‘영자력(霊子力)’이라 불리는 초자연적인 힘을 체득했다고 한다. 메이지 36년(明治,1903) 모리헤이는 대러시아정책에 대해서 천황에게 직소를 꾀하였는데, 과대망상이라고 판단되어 기후현(岐阜県) 에나군(恵那郡)의 고향으로 송환되어 거기서 단식수행에 힘썼다. 머지않아 그가 실시하는 병고치기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나고야(名古屋)에서 대일본제국청년회를 창설하고 몽고에 건너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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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시류신도 |
太子流神道 |
쇼토쿠타이시(聖徳太子)를 조상으로 받들고, 신유불 삼교일치설을 가진 신도유파이다. 쇼토쿠타이시는 소가(蘇我)씨와 함께 모노노베(物部)씨나 나카토미(中臣)씨에 대항해서 일본에 불교를 도입한 인물이다. 중세의 신도설에서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쇼토쿠타이시가 저술했다고 하는 『先代旧事本紀』가 중요하게 여겨지게 됨에 따라 『太平記』의 「未来記」에 있는 것과 같이 예지 능력 등, 쇼토쿠타이시에 대한 신앙이 높아졌다. 오하라에코토바(大祓詞)를 쇼토쿠타이시가 만들었다고 하여, 신・유・불에 대한 근본지엽화실설(根本枝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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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와교단 |
大和教団 |
신도계신종교이다. 호즈미 켄코(保積謙光,1913~76)와 아내인 히사코(史子,1908~)가 세운 야마토교(大和教)에서 히사코가 센다이(仙台)교회를 이끌고 독립한 교단이다. 호즈미 히사코는 유년기부터 허약체질인데 온타케행자(御嶽行者) 밑에서 수행을 하여 극복했다. 쇼와 9년(昭和,1934)에 수행에 뜻을 두고 있는 켄코를 만나 결혼하고, 같이 짓코교(実行教)에서 수행하였다. 10년에 짓코교 유도노산신슈(湯殿山神修)교회를 설립한다. 쇼와 21년에 짓코교로부터 독립하여 야마토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히사코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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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카쿠 |
大角 |
오시키(折敷)의 한 종류이지만, 보통 다리가 있는 가로세로 팔촌(八寸)의 방형인 것을 말한다. 헤이하쿠(幣帛)나 신센(神饌)을 바칠 때 사용된다. 모쿠로쿠다이(目録台)라고 칭할 때도 있다. 신사본청(神社本庁)의 신사제식행사작법규정(神社祭式行事作法既程)에는 본청으로부터의 각 신사에 대한 헤이하쿠는 다이카쿠에 올려서 바치도로 되어 있다. ➠오시키(折敷)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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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히젠교 |
大日然教 |
신도계신종교이다. 오리모 나미(折茂なみ,1893~19)가 교조이다. 나미는 사이타마현(埼玉県)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이를 돌보는 봉공을 하고, 숙식하는 가정부로 일하거나, 방적공장에서도 일하는 등, 고생하면서 성장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몇가지 사업을 시작하지만, 쇼와 4년(昭和,1929)에 남편, 장남과 사별한다. 그 후 차녀와도 사별하고 15년에는 차남이 사망했다. 차남이 사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에서 신의 계시가 들리게 되었다. 영능자 등을 방문하였지만,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얻지 못한채 전쟁이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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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모리베 |
橘 守部 |
1781~1849년. 에도(江戸) 후기의 국학자이다. 통칭은 모토스케(元輔), 호는 호코(蓬壺), 치안(池庵), 시이가모토(椎本) 등. 덴메이(天明) 원년 이세국(伊勢国) 아사케군(朝明郡) 고무쿠촌(小向村) 이이다가문(飯田家)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일가가 이산되었기 때문에 기요미즈 하마오미(清水浜臣) 등에게서 배웠다. 분카 6년(文化,1809) 무사시국(武蔵国) 가츠시카군(葛飾郡) 우치고마촌(内国府間村)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저술에 임했고, 분카 12년(1829)에 다시 에도로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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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미츠요시 |
橘 三喜 |
1635~1703년. 에도(江戸)시대 전기의 신도가이다. 이름은 미츠요시(光義, 美津与志) 호는 이쇼안(為証庵) 등. 나중에 요시다가문(吉田家)으로부터 주영신(樹霊神)인 레이샤고(霊社号)가 주어졌다. 호에이(宝永) 12년 히젠국(肥前国) 히라도(平戸)에서 태어났다. 스루가국(駿河国) 후츄(府中)에 있는 센겐(浅間)신사의 간누시(神主)인 미야우치 마사요(宮内昌与)로부터 요시다신도를 배웠고 스스로 한 파를 만들었다. 소겐(宗源)신도 56전이라 하여 당초는 에도의 아사쿠사(浅草)에서 신도강독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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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츠키 |
高坏 |
신센(神饌)을 바칠 때에 사용되는 것으로 고시다카(腰高)라고도 한다. 『엔기시키(延喜式)』의 센소다이죠사이(践祚大嘗祭)때 보이는 타카스키(多加須伎)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원래는 물건, 특히 음식물을 담는 그릇으로 토제나 목제 등이였다. 오시키(折敷)에 받침대가 붙어있는 형태의 것은 오시키다카츠키(折敷高坏)라고 한다. 그리고 다카츠키를 기대(器台)라고 해서, 위에 목제의 오시키를 올려서 사용하는 형태도 있다. 오늘날의 신사제식에서는 윗 부분은 오시키로 되어있는 형상의 것에 대한 취급법이 신사본청(神社本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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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노우치 시키부 |
竹内式部 |
1712~1767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스이카(垂加)신도가이다. 이름은 타카모치(敬持). 호는 슈안(羞庵) 세이안(正庵). 쇼토쿠(正徳) 2년, 에치고국(越後国) 간바라군(蒲原郡) 니이가타(新潟)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대대로 의사 업무에 종사했다. 17, 18세경 상경하여 도쿠다이지 사네노리(徳大寺実憲)의 하인이 되어 고학했다. 처음에는 마츠오카 유엔(松岡雄淵)에게 배웠고, 그 후 그의 스승인 다마키 마사히데(玉木正英)에게 사사받았으며 기츠케(橘家)신도를 받았다. 또 아사미 케이사이(浅見絅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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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우치노 스쿠네 |
武内宿禰 |
‘建内宿禰’라고도 쓰고 ‘다케노우치 노스쿠네’라고도 읽는다. 삼한정벌(三韓)의 공신(功臣)으로 기(紀), 가츠라기(葛城), 헤구리(平群), 고세(巨勢), 소가(蘇我)씨 등 28씨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전승적인 인물이다. 고겐(孝元)천황의 황자인 히코후토오시마코토노미코토(彦太忍信命)의 손자로, 아버지는 야누시오시오타케오코코로노미코토(屋主忍男武雄心命)이다. 어머니는 가케히메(影姫)이다. 게이코(景行)・세이무(成務)・츄아이(仲哀)・오진(応神)・닌토쿠(仁徳)의 다섯 천황을 모셨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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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구치 나오 |
出口なお |
1836~1918년. 오모토(大本)의 교조. 덴포(天保) 7년 12월 16일, 단바국(丹波国) 후쿠치산(福知山) 죠카(城下)에서 태어났다. 목수인 기리무라 고로사부로(桐村五郎三郎)와 소요(そよ)의 장녀이다. 데구치가(出口家)의 양녀가 되었다. 남편인 마사고로(政五郎)도 목수였는데 가정을 그다지 돌보지 않아 힘든 생활을 보냈다. 메이지 25년(1892) 정월에 처음으로 신이 들려서, 민간에서 신앙되어오던 우시토라(艮)의 곤진(金神)에 의한 ‘삼천세계의 대세탁’이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을 설명했다 그 후에도 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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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구치 노부요시 |
出口延佳 |
1615~90년. 에도(江戸)시대 전기의 이세신궁(伊勢神宮) 게구(下宮)의 신관(神官)이다. 원래 성씨는 와타라이(度会)이다. 통칭은 요산지로(与三次郎), 시나노(信濃), 구다유(偶太夫). 호는 죠쿠안(直庵), 고코도(講古堂)이다. 이름은 노부요시(延良)였는데 고사이(後西)천황의 휘자(諱字)가 나카히토(良仁)이기 때문에 노부요시(延佳)로 바꿨다. 6살 때, 게구(下宮) 곤네기(権禰宜)로 임명되어 종오위하(従五位下)가 수여되었다. 중세 말기의 전란 속에서 황폐해진 이세신궁의 교학 부흥에 생애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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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데구치 노부츠네 |
出口延経 |
1657~1714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이세신궁(伊勢神宮) 게구(下宮)의 신관(神官)으로 곤네기(権禰宜)였다. 원래 성은 와타라이(度会)이다. 통칭은 곤다유(権大夫), 다케와키(帯刀). 호는 고코도(講古堂). 메이레키(明暦) 3년, 이세신궁의 사관(祠官) 데구치 노부요시(出口延佳)의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형이 빨리 세상을 떠난 바람에 가직(家職)을 이었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고전구적(古典旧籍)에 정진했다 특히, 고증의 정밀함은 매우 훌륭하여, 『五部書説弁』의 저자인 요시미 요시카즈(吉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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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구치 오니사부로 |
出口王仁三郎 |
1871~1948년. 오모토(大本)를 조직한 인물. 교단내에서는 성사(聖師)로 불린다. 메이지(明治) 4년 7월 12일, 단파국(丹波国) 구와타군(桑田郡) 아나오촌(穴太村, 교토후京都府 카메오카亀岡)에서 우에다 요시마츠(上田吉松)와 요네(よ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년시절에 조모로부터 고토다마학(言霊学)을 배웠고, 청년시절에는 오카다 코레히라(岡田惟平)에게 국학과 가학(歌学)을 배웠다. 메이지 30년, 아버지의 죽음이 곤진(金神)의 저주라고 들은 것을 계기로 종교 세계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다음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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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즈야 |
手水舎 |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손을 씻고 입을 헹구고 부정을 씻기 위한 시설. ‘죠즈야’라고도 읽는다. 보통 신사의 입구 부근에 있고, 지붕과 기둥만 있는 건물 안에 흐르는 물을 채운 수반이 놓여져 있고, 국자와 같은 용기가 비치되어 있다. 손을 씻는 물을 ‘데미즈’라고 하는 것에서 붙여진 명칭. 전와되어서 ‘죠즈’라고도 읽고, 데미즈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세신궁의 이스즈강(五十鈴川)과 같이, 옛날에는 경내의 용수나 강물이 신에게 예를 올리기 전에 몸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었다. 데미즈야는 일반 참배자가 약식의 미소기(禊,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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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데이나이샤 |
邸内社 |
집 부지 안에 설치된 야시로(社)나 쇼시(小祠)를 말한다. 데이나이샤(第内社)라고도 표기하고, 데이나이신시(邸内神祠)라고도 한다. 원래 신이 진좌해 있던 곳에 저택이 세워지면서 생긴 것과, 우지가미(氏神)의 분령(分霊)이나 존경하고 숭배하는 신의 분령을 저택 내에 모신 것 등이 있다. 숭배하는 신을 모신 예로서 유명한 것은 다이라노 키요모리(平清盛)가 이츠쿠시마(厳島)의 제신(祭神)을 교토의 로쿠하라(六波羅)의 저택 내에 옮겨 모신 베츠구(別宮)이다. 데이나이샤에 모셔지는 신은 진쥬노카미(鎮守神)로 숭배받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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