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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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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노미치 |
真の道 |
신도계신종교이다. 오기와라 마코토(萩原真,1910~81)가 창시한 교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영적 능력이 있었던 오기와라는 쇼와 22년(昭和,1947)부터 영능자(霊能者)로서 심령연구 그룹과 관련을 가졌다. 이윽고 그를 통해서 보여지는 신의(神意)에 따라 의학박사인 시오야 노부오(塩谷信男)와 함께 수양단체 지도리회(千鳥会)를 조직했다. 교령회를 통해서 신자를 모으고 수행을 하며, 신의 아이로서의 생활, 신인합일(神人合一), 신인일여(神人一如)를 목표로 했다. 56년에 오기와라가 사망하자 이미 부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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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마코토노미치교 |
眞乃道教 |
마츠모토 죠타로(松本常太郎,1881~1944)가 시작한 교단이다. 마츠모토는 메이지 14년(明治,1881) 9월, 에히메현(愛媛県) 산촌에 있는 야마오카(山岡)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장해서 쌀장사를 시작하지만 실패한다. 신발제조, 신발과 담배장사, 숯장이 등 여러가지 일에 힘쓰지만, 큰 병에 걸리기도 해서 잘 되지 않았다. 다이쇼 10년(大正, 1921) 숯 굽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마츠모토는 곤코교(金光教) 마츠야마(松山)교회의 신자와 만나고, 교회에 참배하여 이틀 밤낮을 수행하고 돌아오자, 자신이 원하던 훌륭한 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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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마키 야스오미 |
真木保臣 |
1813~1864년. 막부말의 존왕양이파(尊王攘夷派)의 지사(志士)이다. 지쿠고국(筑後国) 구루메(久留米) 성 아래의 세노시타쵸(瀬下町)에 진좌한 미즈텐궁(水天宮)의 신관인 마키사몬 토시오미(真木左門旋臣)의 장남이다. 통칭은 이즈미(和泉), 이즈미노카미(和泉守)이고, 자는 고코(興公), 데이민(定民), 호는 시탄(紫)이다. 덴포 3년(天保,1832) 20세 때 상경하여, 진기관령(神祇官領)인 요시다가(吉田家)로부터 다이구지(大宮司)의 허가장을 받고 종오하(従五位下)에서 이즈미노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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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만다라 |
曼荼羅 |
원래 불교에 의해서 성립된 것으로, 중핵적인 사상이나 교리를 조물(造物)로서 표현한 것. 특히 회화적인 발전을 이루어, 불교법회의 도장에서 쇼곤(荘厳)의 도구로서 주로 이용되었다. 신도에서는 불교만다라의 의의를 염두에 두고, 헤이안(平安)시대 말부터 사원에서 고호(護法)의 진기(神祇)를 권청하기 위해 도상(図像) 등을 그린 즈조(図像)만다라가 이용되기 시작하여, 가마쿠라(鎌倉)시대 이후 점차 퍼져갔다. 그 종류는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는 즈조만다라와 참지자(参詣者)나 고원(講員)이 있는 신사의 유래나 영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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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모노노베신도 |
物部神道 |
『先代旧事本紀大成経』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신도. 이 『大成経』에는 21권본(三十一巻本)과 72권본(七十二巻本)이 있다. 그 성립시기나 유래・계통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고 명확하지 않지만, 둘 다 근세 초기의 위작(偽作)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거의 일치한다. 또 둘 다 취지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다이세이쿄(大成経)신도라고도 한다. 그리고 본래 쇼토쿠타이시(聖徳太子)의 저작이라고 해서 다이시류(太子流)신도라는 명칭도 있다. 모노노베신도라는 명칭이 있는 것은 『大成経』속에 ‘쇼토쿠타이시가 신도학을 일으켰을 때 특히 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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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모즈메 타카미 |
物集高見 |
1847~1928년.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시대의 국학자・국어학자이다. 고카(弘化) 4년 5월 28일, 분고국(豊後国) 키츠키죠카(杵築城下, 大分県杵築市)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학자의 모즈메 타카요(物集高世)이다. 어릴 적부터 중국학(漢学), 국학을 배우고, 나가사키에 유학하여 난학(蘭学)을 배웠으며 이어서 교토(京都)에서 다마마츠 미사오(玉松操)에게 취업해서 국학을 배웠다. 메이지 3년(1870) 6월, 선교사(宣教使, 신도를 국교화하기 위해 설치된 포교기관과 그 직명)인 사생(史生)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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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메 타카요 |
物集高世 |
1817~1883년. 막부말부터 메이지(明治)시대 전기에 걸친 국학자이다. 분카(文化) 14년 2월 1일에 분고국(豊後国) 키츠키죠카(杵築城下, 大分県杵築市)에서 태어났다. 호는 무구라야(葎屋)이다. 어릴 적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중국학(漢学)을 모토다 치쿠케이(元田竹渓)에게, 국학을 와타나베 시게나(渡辺重名)의 문인인 사다무라 나오요시(定村直好)에게 배웠다. 게이오 4년(慶応,1868)에는 그 학력을 인정받아, 분고국의 우사학관(宇佐学館)에 초대되어 신전(神典)을 강의하고, 이어서 키츠키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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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모토다 나가자네 |
元田永孚 |
1818~1891년. 에도(江戸)시대 말기, 메이지(明治)시대 전기의 유학자, 메이지 천황의 시강(侍講)이다. 자는 시츄(子中), 호는 히가시노(東野), 차요(茶陽) 등이다. 분세이(文政) 원년 구마모토번사(熊本藩士)의 장남으로 히고(肥後)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번교 시습관(時習館)에서 배웠다. 여기서는 요시야마 사료(吉山茶陵)를 따랐고 실학의 기풍을 배웠다. 동문으로 요코이 쇼난(横井小楠)이 있으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가독을 상속하고, 교토루스쿄야쿠(京都留守居役)를 거쳐, 메이지 원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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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오리 노리나가 |
本居宣長 |
1730~1801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이다. 예전의 성은 오즈(小津)이고, 요시사다(栄貞), 야시로(弥四郎)라고 했으며, 모토오리로 성을 바꾼 후는 노리나가, 슌안(春庵), 쥬우에(中衛)라고 했다. 호는 스즈노야(鈴屋)이다. 교호(享保) 15년 이세국(伊勢国) 마츠사카(松坂, 현, 마츠사카松阪)에서 태어났다. 목면 도매상을 경영하던 오즈 사다토시(小津定利) 부부가 요시노미쿠마리(吉野水分,미코모리御子守)신사에 자식이 태어나도록 기원하여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가 타계, 22세 때에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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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오리 오히라 |
本居大平 |
1756~1833년. 근세후기의 국학자이다. 옛 성은 이나가케(稲掛), 이름은 시게호(茂穂), 나중에 오히라(大平)라 했다. 모토오리 집안의 양자가 되고 소시에몬(三四右衛門)이라 칭했다. 호는 후지노카키츠(藤垣内)이다. 호레키(宝暦) 6년 이세국(伊勢国) 마츠사카(松坂, 현, 마츠사카松阪)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문인으로 두부가게 다마루야(田丸屋)를 경영하는 이나가케 무네타카(稲掛棟隆)이다. 13세 때 입문한 이후, 항상 노리나가의 가까운 곳에서 공부했다. 아버지 무네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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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모토오리 하루니와 |
本居春庭 |
1763~1828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이다. 통칭은 겐조(健蔵), 나중에 겐테이(健亭), 호는 노치스즈노야(後鈴屋)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장남이다. 호레키(宝暦) 13년 이세국(伊勢国) 아노군(安濃郡) 즈(津, 현재 미에현三重県 즈시津市, 어머니의 본가)에서 태어나, 이이타카군(飯高郡) 마츠사카(松坂, 현재 마츠사카松阪)에서 자랐다. 아버지 밑에서 서적의 서사작업이나 『古事記伝』 외 노리나가의 저작 판하(版下)를 담담하면서 국학의 연찬을 쌓고, 장래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간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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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진타이샤 |
名神大社 |
고대부터 특히 영험이 있다고 여겨졌던 묘진(名神)을 모신 신사. 모두 고대의 사격(社格)제도에서는 타이샤(大社)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칭해진다. 기나이(畿内)에는 야마시로쿠니(山城国), 야마토쿠니(大和国)에 특히 많지만, 그 이외에는 오우미쿠니(近江国), 무츠쿠니(陸奥国), 다지마쿠니(但馬国), 기이쿠니(紀伊国) 등에 많다. 『엔기시키(延喜式)』권9, 10의 진묘쵸(神名帳)에 기재되어 있는, 소위 시기나이샤(式内社) 중에는 224소(所, 310座)의 묘진타이샤가 있다. 한편『엔기시키』권3(臨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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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하루미 |
村田春海 |
1746~1811년. 에도(江戸) 중기의 국학자이다. 가모노 마부치(賀茂真淵)의 문인이다. 엔쿄(延享) 3년 에도 니혼바시(日本橋)의 멸치비료도매상(干鰯問屋)을 하던 무라타 하루미치(村田春道)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성은 다히라(平)이고, 통칭은 헤이시로(平四郎), 지헤이(治兵衛), 덴조(伝蔵)이다. 자는 시칸(士観), 호는 니시고리노야(錦織舎) 등이다. 중국학(漢学)을 핫토리 츄에이(服部仲英), 우도노 시네이(鵜殿士寧), 미나가와 키엔(皆川淇園)에게 배우고, 시문을 자주 지었다. 공의어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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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토베 요시카 |
六人部是香 |
1806~1863년. 막부말의 히라타파(平田派) 국학자이다. 분카(文化) 3년 야마시로국(山城国) 오토쿠니군(乙訓郡) 무코(向日)신사 사관인 무토베 세츠카(六人部節香)의 아들로 태어났다. 분세이 6년(文政,1823), 18세 때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에게 입문하고, 그 이후 면학에 힘써서, 간사이(関西)의 히라타파의 중진적인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아츠타네의 유명관(幽冥観)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우부스나샤(産土社)의 신관으로서의 입장에서, 각지의 우부스나(産須那)신사가 그 지역내의 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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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기교 |
禊教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의 하나이다. 신도계신종교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다. 교조는 이노우에 마사카네(井上正鉄,1790~1849)이다. 마사카네는 다케바야시번(館林藩) 즉 현재의 군마현(群馬県)의 무사의 자식으로 에도(江戸)에서 태어났다. 덴보 5년(天保,1834)에 신기하쿠시라카와가(神祇伯白川家)에 입문하고, 신배식(神拝式) 허가장을 얻은 후, 무사시노국 우메다신메이궁(梅田神明宮)의 신관(神職)이 되어 신도포교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활동이 사사봉행(寺社奉行)보다 ‘신의이류(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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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기교신파 |
禊教真派 |
신도계신종교이다. 미소기교에서 분파한 교단이다. 사카타 야스히로(坂田安弘,1962~)가 조직했다. 미소기교에서는 5대 관장인 사카타 야스요시(坂田安儀)대인 쇼와 49년(昭和,1974)에 도쿄에 있던 이노우에신사(井上神社,교조는 이노우에 마사카네井上正鉄를 모시고 있었다)가 소실되었다. 그 재건과 수행법을 둘러싸고 교단내에서 대립이 생겼다. 그것이 수습되지 않자 61년에 야스요시의 장남인 사카타 야스히로(坂田安弘)가 별도로 미소기교신파를 조직하고 도치기시(栃木市)에 본부를 설치했다. 야스히로가 교주에 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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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 나오카즈 |
宮地直一 |
1886~1949년. 신도사(神道史)학자이다. 메이지(明治) 19년 1월, 고치시(高知市) 에노구치쵸(江ノ口)에서 태어났다. 미야지 나오치카(宮地直親)의 장남이다.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했다. 졸업논문은 『하치만궁(八幡宮)의 연구』이다. 메이지 42년(1909)에 내무성에 들어가 신사고증을 담당했다. 이어서, 메이지신궁 조영국(造栄局) 참사(参事)가 되어, 메이지신궁의 창건에 진력을 다했다. 쇼와(昭和,1926~) 초기에는 내무성 신사국 고증과장의 요직에 근무하고, 신사행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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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 스이이 |
宮地水位 |
1852~1904년. 미야지신센도(宮地神仙道)의 창시자이다. 가에이(嘉永) 5년 11월 8일, 도사국(土佐国) 우시오에촌(潮江村) 우시오에텐만궁(潮江天満宮)의 신사 가문(社家)에서 태어났다. 미야지 토키와(宮地常盤)가 아버지이다. 어릴적 이름은 마사에(政衛), 마사아키(政昭), 키요미(清海), 요리키(再来), 카키와(堅盤)라고도 불렸다.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가 타계한 후의 문인인 아버지로부터 현학(玄学=도학, 신선도)의 지도를 받고 탈혼(脱魂)으로 신선계를 자유롭게 출입했다고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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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 이즈오 |
宮地厳夫 |
1847~1918년. 근대의 신도가이다. 고카(弘化) 4년 8월, 도사국(土佐国) 고치(高知)에서 태어났다. 본성은 데마스씨(手増氏)이다. 미야지 미네(宮地重岑)의 양자이다. 메이지(明治) 5년(1872)에 교부성11등출사(等出仕), 6년에 고다이(皇大)신궁 주전(主典)이 되고 곤네기(権禰宜)가 되어, 8년에 히라오카(枚岡)신사 소구지(小宮司)로 옮겼다. 메이지 10년부터 진구교(神宮教)의 교도직에 전념하고, 각지의 신궁교구를 역임했으며, 메이지 9년에는 대교정(大教正)으로 승진하고 요직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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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미야지신센도 |
宮地神仙道 |
미야지 스이이(宮地水位,가키와堅磐,1852~1904)를 창시자로 하는 도교적인 색채가 강한 신도교단으로 고치현(高知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미야지가(宮地家)는 야마토타케루의 네번째 자식 다케카이코노미코(健具児王)를 선조로 하고, 그 8대 자손 미야지 노부카츠(宮地信勝)가 야마시로(山城)에서 도사(土佐)로 옮겨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한다고 전해진다. 궁내청(宮内庁) 장전(掌典)으로 근무했던 미야지 이즈오(宮地厳夫,1847~1918 호는 도가쿠東岳), 도쿄제국대학의 신도강좌를 담당했던 미야지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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