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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Title) |
일본어표기 |
본문(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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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구・산마이 |
散供・散米 |
하라에(祓) 때, 또는 신에게 참배를 할 때에 신전(神前)에 뿌리거나 올리는 쌀, 혹은 그 의례를 말한다. ‘우치마키’라고도 한다. 산구와 산마이를 거의 같은 의미로 보는 견해와 산마이는 산구의 한 종류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산마이는 쌀을 뿌리는 것이고, 산구는 그 이외에도 술, 콩 등을 사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고 한다. 하라에에 쌀을 이용하는 것은 쌀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인정하는 신앙이 배후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산구・산마이라고 해도 사방에 뿌린다고만 할 수는 없으며, 그릇에 담아서 신센(神饌)으로 바치는 경우도 있다. 신전에 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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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산노신도 |
山王神道 |
산노신도는 엔랴쿠사(延暦寺)의 진수사(鎮守社)인 히요시타이샤(日吉大社)의 산왕신앙을 기반으로, 천태종(天台宗)에서 형성된 신도의 한 유파이다. 근세의 도쇼궁(東照宮)을 둘러싼 교설은 특히 이치지츠(一実)신도라 하여 구별된다. 히요시(日吉)의 신은 원래 히에이산(比叡山)의 신이었는데, 사이쵸(最澄)가 엔랴쿠사를 개창함에 따라 천태종과의 교섭이 시작되었다. 산노라는 호는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산의 신을 산왕이라고 칭하는 것을 따르지만, 직접적으로는 중국 천태종의 본산인 천태종 국청사(国清寺)의 진수신(鎮守神)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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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산보 |
三方 |
제사지낼 때에 신센(神饌)을 올려놓는 도구. 원래는 고귀한 사람이나 주인 등에게 물건을 진상할 때에 사용되는 것이었다. 오시키(折敷)의 밑부분에 받침이 붙은 형태로, 받침의 세 면에 구멍이 나 있는 것에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 구멍을 겐쇼(眼像,옛날에는 ‘겐쇼’, 현재는 ‘구리카타’ 혹은 ‘구리가타’)라고 부른다. 네 면에 구멍이 뚫린 것(四方)이나 구멍이 하나도 뚫려있지 않은 것(供饗)도 있지만, 오늘날의 제식에서는 보통 산보가 사용되어진다. 히노키(檜)의 원목으로 만들지만, 검정색이나 주홍색을 칠한 것도 있다. 후자는 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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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샤고 |
社号 |
신사의 호칭을 말한다. 현재는 7종류가 있고 이세신궁(伊勢神宮)에만 사용되며, 그 정식명칭인 ‘신궁’ 외에 ~신궁(神宮), ~궁(宮), ~타이샤(大社), ~신사(神社), ~샤(社), ~다이신궁(大神宮)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신사라는 샤고이다. ~신궁의 샤고를 붙이는 예로서는 아츠타(熱田)신궁, 이소노카미(石上)신궁, 가시마(鹿島)・가토리(香取)신궁, 메이지(明治)신궁 등이 있다. ~타이샤의 예로서는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구마노나치(熊野那智)・구마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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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덴과 경내 |
社殿と境内 |
신사(神社)건축의 역사와 유형 신사의 경내는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에, 속세와의 사이에는 어떠한 경계가 설정되어져 있다. 신성한 영역으로의 진입로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도리이(鳥居)가 있다. 혼덴(本殿) 주변은 신사의 성격에 따라 개방적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목제 또는 석제의 울타리(玉垣)에 둘러싸여져 있고, 불교건축을 응용한 회랑(回廊)이나 누문(楼門)도 사용된다. 경내에는 상징적인 미소기(禊)를 위한 데미즈야(手水舎)나 도로(燈籠) 등의 설비가 있다. 신사를 구성하는 건물에는, 먼저 제신(祭神)이 진좌(鎮座)해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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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샤무쇼 |
社務所 |
신사의 사무일반을 취급하는 장소이고, 신사츠(神札) 등의 수여소나 기도접수소 등도 겸한다. 같은 건물내에 사이칸(斎館)이나 나오라이쇼(直会所) 등이 부설되는 경우가 많다. 메이지(明治)이전, 이러한 역무들은 신관(神職)의 역택(役宅)・사택에서 이루어졌으나, 샤케(社家)가 폐지되어 신사가 국가의 관리를 받게 됨에 따라, 공적인 사무로서 신관의 사생활과 명확하게 구별된 신사의 사무를 보는 장소가 필요하게 되었다. 메이지 30년의 사격(社格)승격의 내부규정에서도 샤무쇼는 무라샤(村社)에 이르기까지 신사의 필요불가결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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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샤쿠 |
笏 |
笏의 음은 고츠이지만, 그 자음이 고츠(骨)와 통하기 때문에 이를 꺼려 샤쿠라고 부른다. 원래 소쿠타이(束帯)를 착용할 때에 오른손에 드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신관의 복장(衣冠, 斎服, 狩衣, 浄衣)의 가이구(諧具,한 세트가 갖추어진 것)로서 사용된다. 샤쿠는 원래 뒷면에 의식의 순서 등을 기록한 종이(笏紙)를 붙여서 잊었을 때를 대비하여 쓰여졌는데, 나중에는 주로 용의(容儀)를 정비하는 도구가 되었다. 타이호레이(大宝令=의복령)에서는 5위 이상은 게샤쿠(牙笏=象牙), 6위 이하의 관인은 모쿠샤쿠(木笏=櫟, 柊, 榊, 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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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메이교 |
晴明教 |
세카이큐세이교(世界救世教)계통의 신종교이다. 오모토(大本)의 신자로 세카이큐세이교 고타마대교회(光玉大教会)의 기하라 요시히코(木原義彦)가 쇼와 30년(昭和,1955)에 규세이교와의 관련을 끊고 분파 독립하여 새로운 종교법인을 설립. 세카이메이슈교(世界明主教)라 했다. 하지만 독립 후도 세카이큐세이교 교조인 오카다 모키치(岡田茂吉,1882~1955)를 ‘메이슈사마(明主様)’로 숭배하고, 기하라도 오카다의 제1 제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33년에 본부가 현위치로 정해졌다. 35년에 신건강협회(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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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세이신묘죠카이 |
誠心明生会 |
신도계신종교이다. 후지타 모토나리(藤田宗倫,1903~85)가 쇼와 21년(昭和,1946) 4월에 히로시마현(広島県) 후쿠야마시(福山市)의 인요세키궁(陰陽石宮)의 구지(宮司)에 취임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에서 시작된다. 모토나리는 신관(神職)인 할아버지가 있고 구제삼고등학교(旧制三高)를 나와 고쿠가쿠인(國學院)대학을 졸업한 후, 쇼와 7년 조선신궁(朝鮮神宮)에 취직한다. 조선국내에 신사가 창건되고, 쇼와 20년에는 종군신관(宗軍神官) 소집에 응모했지만, 종전을 맞이하여 같은 해 말에 귀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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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쵸노이에 |
生長の家 |
신도계의 오모토(大本)를 계승한 신종교이다. 창시자인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1893~1985)는 다이쇼 8년(大正,1919) 오모토에 입신하여 기관지(機関誌) 『신령계(神霊界)』의 편집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다이쇼 10년에 제1차 오모토사건을 계기로 탈퇴하고, 그 후 아사노 와사부로(浅野和三郎)의 심령과학연구소에 참가한다. 우연히 입수한 뉴 소트(New Thought), 멘탈 사이언스(Mental Science)에서 광명사상(光明思想)을 체득하고 신자의 모임을 만든다. 쇼와 4년(昭和,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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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세이코교 |
誠光教 |
신도계신종교이다. 후지타 노부히코(藤田宣彦,1889~1977)가 교조이다. 노부히코는 메이지 22년(明治,1889), 후지타 시즈카나(藤田静哉)와 토쿠(トク) 사이에 장남으로 히로시마시(広島市)에서 태어났다. 모친에게는 영적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노부히코는 신리교(神理教)에 입신하여 신리교 히로시마교회장이 되었다. 한 때는 교세를 상당히 확장시켰다. 쇼와 15년(昭和,1940) 에 종교단체법에 의한 종교결사. 21년에 신리교에서 독립하여 종교법인령에 의한 법인이 된다. 28년에 종교법인법에 의한 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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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카이마히카리분메이교단 |
世界真光文明教団 |
오모토(大本) 및 세카이큐세이교(世界救世教)계통의 신종교이다. 창시자는 오카다 카우타마(岡田光玉,1901~74, 본명은 요시카즈良一)로 초대 교주(教え主,오시에누시) 혹은 구세주(救い主,스쿠이누시)로 칭한다. 세카이큐세이교의 지부장을 하고 있던 카우타마는 쇼와 34년(昭和,1959) 5일간 인사불성에서 일어나서 ‘하늘의 시간이 왔다. 일어나라. 이름을 카우타마(光玉)라 지어라. 데카자시를 하여라. 험난한 세계가 된다’라는 계시를 받아서 L・H 요코시토모노카이(陽光子友乃会)를 설립하고 활동을 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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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세카이신도교 |
世界心道教 |
덴리교계(天理教系)의 신종교이다. 아이다 히데(会田ヒデ,1898~1973)가 교조이다. 아이다는 니이가타현(新潟県)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나고야(名古屋)의 방적공장을 시작으로 다카자키(高崎), 도쿄(東京)와 각지에서 일하며 고생을 했다. 다이쇼 12년(大正,1923)에는 남편이 병에 걸리고, 자신도 폐렴으로 생사를 헤매다 그 해 말에 덴리교에 입신했다. 그 후 가업을 돌보면서 포교에 힘써 15년에 덴리교 교사가 되었다. 쇼와 13년(昭和,1983) 3월에 니샤(二社), 17년 12월에는 핫샤(八社)의 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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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세카이큐세이교 |
世界救世教 |
신도계신종교이다. 오모토(大本)계통의 교단. 오카다 모키치(岡田茂吉)가 교조이다. 오카다는 도쿄(東京) 아사쿠사(浅草) 노점상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 미술학교의 예비과정에 입학했지만, 악성 눈병에 걸려서 퇴학한다. ‘병의 도매상’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수많은 병과 사업의 실패, 육친의 불행 등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다이쇼 9년(大正,1920) 오모토교에 입신하였다. 13년경부터 신앙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쇼와 3년(昭和,1928)부터 상업을 그만두고 오모토의 선교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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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센게 타카토미 |
千家尊福 |
1845~1918년.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시대의 종교가, 정치가이다. 제80대 이즈모코쿠소(出雲国造). 이즈모타이샤의 구지(宮司). 이즈모타이샤교(出雲大社教)의 초대 관장이다. 고카(弘化) 2년 8월 6일 기츠키노오오야시로(杵築大社, 현재의 이즈모타이샤). 고쿠소택(国造邸)에서 제79대 이즈모코쿠소 센게 타카즈미(千家尊澄)의 적남(嫡男)으로 태어났다. 메이지 5년(1872) 1월 이즈모타이샤 다이구지(大宮司)가 되어 4월에는 교도직 곤쇼쿄세이(権少教正)에 보임되어, 메이지시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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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센게 토시자네 |
千家俊信 |
1964~1831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이다. 통칭은 키요누시(清主), 호는 기사이(葵斎), 우메노야(梅廼舎) 등. 메이와(明和) 원년 정월 16일, 기츠키노오오야시로(杵築大社, 현재의 이즈모타이샤)에 제75대 이즈모코쿠소(出雲国造)인 토시카츠(俊勝)의 3남으로 태어났다. 젊어서 마츠에(松江)에 나가 한학(漢学)을 배웠고, 나중에 교토(京都)에 유학(遊学)하여 니시요리 세이사이(西依成斎)로부터 스이카(垂加)신도를 배웠다. 덴메이 6년(天明,1786)에는 이요(伊予)의 가마타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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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센자후다 |
千社札 |
신사불각(神社仏閣)에 참배하여 자신이 태어난 곳, 이름, 연월 등을 써서 샤덴(社殿) 등에 붙이는 종이후다(紙札)를 말한다. 무로마치(室町)시대부터 순로를 따라 수 많은 신사불각을 순배(巡拝)하며 기원하는 풍습이 생겼는데, 특히 관음영장(観音霊場)의 후다쇼메구리(札所めぐり,후다소순례)가 성행하였다. 순례자들은 각 후다쇼(札所)에 후다를 올리고 다녔다. 에도(江戸)시대 중기에는 하야리가미(流行神)신앙과 더불어 수 많은 신사불각에 순배하는 것이 유행했다. 이것을 센자모데(千社詣)라고 하는데, 그것과 함께 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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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샤・맛샤 |
摂社・末社 |
사격(社格)의 일종이다. 현재 셋・맛샤의 규정은 없지만, 본궁본사(本宮本社)의 관리 하에 있는 소규모 신사의 명칭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제신에 관련된 신이나 지주신(地主神) 등, 본사와 깊은 연고가 있는 신을 모시는 에다야시로(枝社)인 경우가 많고, 본사의 경내(境内)에 있는 것을 게이다이(境内)셋샤 혹은 게이다이(신)사, 밖에 독립되어진 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게이다이가이(境内外)셋샤라고도 해서 구별한다. 메이지(明治)의 사격제도에서는 간코쿠헤이샤(官国幣社)의 에다야시로에 대해서 다음 5항목의 고정(考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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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소노다 모리요시 |
薗田守良 |
1785~1840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신궁(神宮)학자, 본래의 성은 아라키다(荒木田). 내궁(内宮)의 네기(禰宜)인 소노다 모리츠라(薗田守諸)의 아들, 덴메이(天明) 5년에 남동생인 모리츠네(守彜)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어릴적 이름은 오키노마로(隠岐麻), 모리이네(守稲)이고, 호는 사이엔슈진(西園主人). 5세 때 곤네기(権禰宜), 28세인 분카 9년(文化,1812)에 네기로 임명받았다. 분세이 연중(文政,1818~1830)에 궁내에 화재가 났을 때 그는 몸을 던져 신령(神霊)을 받들어 옮기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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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소레이샤 |
祖霊社 |
우지가미(氏神)・우부스나(産土)의 신사에 마련된 우지코(氏子)의 조상 영(霊)을 모시는 게이다이샤(境内社)나, 신소사이(神葬祭)의 집에 상설된 조상의 영을 제사지내기 위한 데이나이샤(邸内社). 옥내제단(屋内祭壇)의 예도 있다. 소레이덴(祖霊殿)・미타마야(御霊舎) 등의 명칭이 있다. 에도(江戸)시대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공양은 거의 대부분 불교가 담당하고 있었고, 번주(藩主) 등 지역의 공로자를 모시는 호코라(祠)나 요시다(吉田)집안의 재허장(裁許状)을 가지고 있는 샤케(社家)에서 조상의 영을 신도식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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