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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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기마치 킨미치 正親町公通 1653~1733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스이카(垂加)신도가이다. 호는 후스이오(風水翁), 후스이켄(風水軒) 등. 스모리레이샤(須守霊社)라고도 불렸다. 쇼오(承応) 2년 윤6월 26일, 곤다이나곤(権大納言)인 오기마치 사네토요(正親町実豊)의 막내로 태어났다. 시종(侍従), 근위소중장(近衛少中将), 참의(参議), 곤다이나곤을 역임했고, 무가전주(武家伝奏)도 하여 종일위(従一位)에 임명되었다. 엔포 8년(延宝,1680)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에게 입문하였는데, 수년이 지난 뒤 고제자...
2 오기마치신도 正親町神道 오기마치 킨미치(正親町公通,1653~1733)가 스이카(垂加)신도를 천황을 비롯한 조정의 신하(廷臣)들에게 전한 것에서 시작된다. 킨미치는 엔포 8년(延宝,1680)에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에게 서약문(神道誓文)을 제출하고, 본격적으로 스이카신도를 배움과 동시에 주자학도 수학했다. 안사이는 2년 후인 덴와 2년(天和,1682) 9월 16일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사망하기 이틀 전에 안사이의 제자인 이즈모지 노부나오(出雲路信直), 나시키 스케유키(梨木祐之), 마츠모토 타메오키(松本為起)가 스이카신도...
3 오누사 大麻 누사(幣・麻・奴佐)의 미칭(美称). 신에게 기원할 때 바치는 물건이나 죄를 씻을 때에 내어 놓는 것을 누사라고 한다. 목면, 마가 주를 이루며, 나중에는 천이나, 종이 등이 사용되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고지키덴(古事記伝)』 속에서 신에게 바치는 비단, 목면, 마라고 해석하고 있다. 오랜된 용례로는 『고지키(古事記)』의 쥬아이(仲哀)천황 조(条)에는 오누사(大奴佐)가 오하라에(大祓)를 할 때 내놓았다는 기술이 보인다. 하라에(祓)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경우의 오누사로는, 사카키(榊)의 가지에 오사오(...
4 오리쿠치 시노부 折口信夫 1887~1953년. 민속학자, 국문학자, 신도학자이다. 가인으로서의 이름은 샤쿠쵸쿠(釈迢空)이다. 메이지(明治) 20년 2월 11일, 오사카후(大阪府) 니시나리군(西成郡) 기즈촌(木津村)의 상가를 경영하는 집에서 태어났다. 43년 고쿠가쿠인대학 졸업. 잠시동안 오사카에서 촉탁(嘱託)교원을 한 후 상경, 향토회에서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国男)를 만나, 본격적인 민속학연구에 들어갔다. 30세에 『口訳万葉集』를 완성. 다이쇼 9년(大正,1920) 고쿠가쿠인대학 전임강사, 다음 해 교수. 쇼와 3년(昭和,1...
5 오모토 大本 신도계의 신종교이다. 개조(開祖)인 데구치 나오(出口なお,1836~1918)와 성사(聖師)인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1871~1948)를 교조로 한다. 아야베(綾部)에 있던 데구치 나오는 메이지 25년(明治,1892) 설날에 영험한 꿈을 꾸고, 신들림을 경험했다. 이것을 계기로 우시토라노콘신(艮の金神)의 말을 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오후데사키(お筆先,신의 계시를 써내려간 책)를 썼다. 예언과 병고치기가 소문이 나서 신자가 증가하고, 27년(1895)부터 한 때 곤코교(金光教)와 공동으로 포교...
6 오모토히카리노미치 大夲光之道 오모토(大本) 및 세카이큐세이교계(世界救世教系)의 신종교. 호칸 메이쿄(宝観明鏡,1923~)가 창시자이다. 쇼와 27년(昭和,1952), 당시 세카이큐세이교의 도요오카시로가미(豊岡城上)의 지부장이었던 이케우치 카즈히데(池内一次,1895~1971)는 오모토 개조인 데구치 나오(出口なお)의 영적 계시를 받아, 이 지역이 오모토라는 신의 말씀(神言)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쇼와 30년에는 사망 직전의 세카이큐세이교 교조인 오카다 모키치(岡田茂吉,교단내에서는 지칸메이슈自観明主라고 부른다)가 자신의 영...
7 오미와교 大三輪教 신도계신종교. 사코 칸(迫カン,1878~1937)이 교조이다. 칸은 메이지 11년(明治,1878) 무라카미 키사부로(村上喜三郎)・시유(志ゆ)의 차녀로 나라현(奈良県)에서 태어났다. 10세 때부터 영감(霊感)이 생겼다고 한다. 사코 츠네조(迫常造)와 결혼한 후에 신도적인 수행을 시작했다. 기도와 약초를 수여하여 병자를 고치게 되어 신봉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메이지 42년에 신의 계시에 따라 미와산(三輪山) 기슭에 수행장소를 설치하고, 거주지를 옮겨서 종교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포교를 하기 위해서 신도(본국) 오...
8 오미와교 大神教 신도계신종교. 고지마 모리요시(小嶋盛可)가 교조이다. 메이지 5년(明治,1872)에 나라현(奈良県)의 오미와(大神)신사에 부설된 쇼쿄원(小教院)이 기원이다. 13년에 오미와교회가 되었다. 신사에 부속된 고샤(講社)적인 존재로서 신사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메이지 15년에 신관(神職)은 교도직을 겸할 수 없게 되어서 오미와신사도 분리되어 독자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18년에 신도사무국(나중의 신도본국)에 소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쇼와(昭和) 27년에 몇개의 교회와 고샤를 결집해서 오미와교를 설립했다....
9 오미쿠지 おみくじ 어떤 일의 결정이나 길흉의 판단을 위해 행해지는 점의 일종. ‘미쿠지’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쿠지에는 어떤 일들을 공평하게 정하기 위해서, 우연의 움직임을 이용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측면과 신의 판단을 필요로 할 때에 신의(神意)를 묻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측면이 있다. 후자의 경우가 오미쿠지(御神籤,御神鬮)이며, 중요한 현안의 결정이나 길흉선악의 판단, 혹은 후계자의 선정 등에 있어서 신의 뜻을 받들 필요가 있을 때에 행해졌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옛날에는 히네리부미(短籍)의 형식을 취하여 판단하기 힘든 사항이나 인명 등을 몇개의 ...
10 오시키 折敷 히노키(檜) 등의 얇은 널판지로 만든 방형의 쟁반으로 신센(神饌)이나 헤이하쿠(幣帛)를 바칠 때에 사용하는 것이다. 원래 음식물을 담는 받침이었다. 오늘날에는 산보(三方)의 일부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으나, 그 경우는 산보의 받침 윗부분을 말한다. 대부분은 원목으로 만든 것이지만, 검정색이나 주홍색 등을 칠한 누리오시키(塗折敷), 무늬를 그려넣은 것을 에오시키(絵折敷)라고도 한다. 신사본청(神社本庁)에 의해 정해진 현재의 신사제식행사작법규정(神社祭式行事作法規程)에서는 오시키를 바칠 경우의 잡는 법은 엄지손가락을 좌우 가...
11 오야마 타메오키 大山為起 1651~1713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스이카(垂加)신도가이다. 게이안(慶安) 4년, 야마시로국(山城国) 기이군(紀伊郡)에서 태어났다. 후시미(伏見)의 이나리(稲荷)신사 간누시(神主)인 마츠모토 타메요시(松本為穀)의 3남이다. 3세 때 오야마 마사야스(大山正康)의 양자가 되었다. 13세 때 오야마씨 성을 버리고 마츠모토씨로 돌아와서 가직인 가구라아즈카리(神楽預)가 되었다. 엔보 8년(延保,1680)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斎)에게 신도기문(神道誓文)을 제출했다. 덴와 2년(天和,178...
12 오야마네즈미노콘신지교회 大山ねず命神示教会 신도계신종교이다. 이나이 사다오(稲井定雄,1906~88)가 교조이다. 이나이는 요코하마(横浜)에서 공중목욕탕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인후암 진단을 받고 수행자(行者)의 가지기도(加持祈祷)도 효과가 없어 괴로워하고 있던 터에, 쇼와 21(昭和,1946)년 12월 어느 날 밤, 오야마네즈노미코토(大山ねず命)가 나타나 기적을 일으켰다. 그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심으로 오야마네즈노미코토의 이름을 연창했다. 그리고 23년 9월, 신이 내려 ‘오야마네즈노미코토의 사자(使者)로서 신의 힘을 받았다’. 5년 후인 28년 8월...
13 오이시고리 마스미 大石凝真素美 1833~1913년. 언령(言霊)학자이다. 성은 모치즈키(望月), 어릴 적 이름은 하루오(春雄),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이스케 코무(大輔広矛)라고 하였다. 덴포(天保) 3년 11월 이가국(伊賀国) 우에노(上野)에서 태어났다. 의학과 국학을 배웠지만,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기후(岐阜)의 수험자(修験者) 야마모토 히데미치(山本秀道)에게 사사(師事)받고 수행과 신전(神典)연구에 몰두했다. 메이지 6년(明治,1873)에 오이시고리 마스미로 개명했다. 언령학자인 야마구치 시도(山口志道)와 나카무라 코도(中...
14 오카 쿠마오미 岡 熊臣 1783~1851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이며 신관(神職)이다. 덴메이(天明) 3년 3월 9일, 이와미국(石見国) 가노아시군(鹿足郡) 기베촌(木部村)에서 태어났다. 도미타케야마(富長山) 하치만궁(八幡宮) 신관인 오카 타다히데(岡忠英)의 아들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에게 심취해 있던 아버지로부터 어릴 적부터 신도를 기본으로 한 교육을 받았다. 분카 4년(文化,1807) 노리나가 문하생인 센게 토시자네(千家俊信)에게 입문하여 국학을 배웠고, 분카 5년부터 1년간, 에도에 유학(遊学)했다...
15 오칸미치 おうかんみち 덴리교계(天理教系)의 교단이다. 덴리교의 교사였던 야마다 우메지로(山田梅次郎,1875~1941)가 다이쇼 원년(大正,1912)에 신의(神意)를 감득하고, 그 후 덴리연구회, 덴리산린코(天理三輪講) 등 몇개의 덴리교계 교단을 거쳐서 개교했다. 교리와 의례는 덴리교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쇼와 11년(昭和,1936) 1월 11일, 우메지로는 천계(天啓)로부터 덴리교 교조인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1798~1887)의 남편 젠베이(善兵衛)의 환생으로서 자신이 감로대(甘露台)라는 자각에 이르고, ...
16 오쿠니 타카마사 大国隆正 1792~1871년. ‘본교본학(本教本学)’을 제창한 막부말 유신기의 국학자이다. 이와미국(石見国) 쓰와노(津和野) 번사(藩士)인 이마이 히데카(今井秀馨)의 장자로 에도(江戸) 사구라다(桜田)의 저택에서 태어났다. 분카 4년(文化,1807)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에게 입문, 쇼헤이자카학문소(昌平坂学問所)에서 고가 세이리(古賀精里)에게 사사받고, 무라타 하루카도(村田春門,1739~68)에게 음운학(音韻学)을 배웠다. 분카 14년 가독(家督)을 이었다. 분세이 원년(文政,1818)...
17 오타비쇼 御旅所 오카리야(お仮屋), 안구(行宮) 등으로도 불리며, 신코(神幸)의 중계지 및 목적지가 되는 곳이다. 신령은 신사의 신자(神座)에서 신요(神輿)로 옮겨지고, 우지코(氏子)구역을 돌고 오타비쇼에 와서 제사를 지낸다. 오타비쇼는 혼샤(本社)나 제신과 유래가 깊은 장소가 선택되지만, 그 형태에는 몇가지의 종류가 있다. 즉, 오타비쇼 전용의 덴샤(殿社)를 상설한 형태, 경내 외 맛샤(摂社)나 제신인 배우신(配偶神)을 모시는 신사와 같은 특정한 신사가 지정되는 형태, 그 외에도 우지코의 집을 선정하거나 필요한 때에 임시적으로 건물을 정해서 ...
18 오토리 셋소 鴻 雪爪 1814~1904년. 온타케교(御嶽教) 제2대 관장이다. 분카(文化) 11년 1월 1일, 빈고국(備後国) 인노시마(因島)에서 태어났다. 승려가 되어 에치젠(越前) 고켄사(孝顕寺)의 주지가 되었으며, 이어서 이이(井伊)집안의 보살소(菩薩所)인 히코네세이료사(彦根清凉寺)의 제26대 주지가 되었다. 데츠멘세이세츠오쇼(鉄面清拙和尚)로 칭해졌다. 메이지유신 이후, 종교행정과 연관되어가면서 메이지 4년(明治, 1871)에 환속(還俗)하고 신도가가 되었다. 5년, 교부성 고요가카리(御用掛)가 되어 중교정...
19 온타케교 御嶽教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신도13파 중 하나. 온타케신앙을 기반으로 하는데, 메이지(明治,1868~) 초기의 종교행정 과정에서 하나의 교파로서 조직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온타케산(御嶽山)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근세의 고샤(講社)와 같은 교단의 발전적인 형태이다. 시모야마 오스케(下山応助, 생몰연도 미상)가 메이지유신 이후, 온타케신앙을 결집할 필요를 느끼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여 조직화가 진전되었다. 오스케는 메이지 6년(1873)에 대대로 있던 고(講)를 기반으로 온타케교회를 설립. 13년에는 히라야마 세이사이...
20 와카바야시 쿄사이 若林強斎 1679~1732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스이카(垂加) 신도가, 유학자이다. 자는 시인(子寅)이고, 이름은 마사요시(正義), 유키야스(進居)이며, 호는 교사이(強斎), 보난켄(望楠軒), 히케이(披瓊) 등이다. 엔포 7년(延宝,1679), 교토(京都)에서 태어났다. 아사미 케이사이(浅見絅斎)에게 배웠고, 야마모토 후쿠사이(山本復斎), 니시요리 세이사이(西依成斎)와 함께 아사미 산케츠(浅見三傑)라 불렸다. 쇼토쿠 원년(正徳,1711)에 아사미 케이사이가 타계한 후부터는 교토에 학사를 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