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사전(Encyclopedia of Shinto in Korea)

●일본어 한글표기는 국립국어원 표기법에 준하나,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부분도 있다.
●고유명사, 전문용어는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하고, 일본식한자를 표기한다.
 (단,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에 대해서는 한자 음독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Links:    초보자를 위한 그림으로 보는 신도 입문 (図説による神道入門)

検索結果一覧(Search Results)

타이틀(Title) 일본어표기 본문(Text)
1 이케다 미츠마사 池田光政 1609~1682년. 비젠국(備前国)의 오카야마번주(岡山藩主). 통칭은 신타로(新太郎). 시호는 호넷코(芳烈公). 게이쵸(慶長) 14년에 오카야마번주 이케다 토시타카(池田利隆)의 아들로 태어났다. 겐와 2년(元和,1616) 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 유언을 이어받았는데, 다음 해 이나바(因幡), 호키(伯耆)로 감봉(減封)되었다. 간에이 5년(寛永,1628) 장군 히데타다(秀忠)의 딸 센히메(千姫)의 아이인 카츠코(勝子)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9 년 비젠국이 오카야마번으로 바꾸면서 실질적 번조(藩組)가...
2 이쿠타 요로즈 生田 万 1801~1837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이다. 교와(享和) 원년에 태어났다. 고즈케국관림번사(上野国館林藩士) 이쿠타 노부카츠(生田信勝)의 아들이다. 생전의 이름은 구니히데(国秀), 호는 다이츄 도진(大中道人)이다. 이쿠타 미치마로(生田道麿), 스가와라 미치마로(菅原道満)라고도 했다. 소년시대부터 번교(藩校)에서 배웠고, 시문을 좋아했기 때문에 번교의 학풍(崎門)에는 맞지않아 이쿠타가의 조상인 사카에(栄)의 저서인『大中経』로 독학했다.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의 글을 접하고 국학에 뜻...
3 이토 로쿠로베에 伊藤六郎兵衛 1829~1894년. 마루야마교(丸山教)의 교조이다. 분세이(文政) 12년 7월15일, 무사시국(武蔵国) 다치바나군(橘樹郡) 노보리토무라(登戸村, 현재 가와사키시川崎市 다마구多摩区)에 기요미야 겐로쿠(清宮源六)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4세 때 이토(伊藤)집안의 양자가 되어 가독(家督)을 상속한 후 로쿠로베에라는 이름을 받았다. 청년때부터 신앙심이 깊고, 기요미야 집안에 전해지는 마루야마코(丸山講, 富士講의 하나)를 재흥시키려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지 3년(1870)에 아내의 병이 치유된 것을 신에...
4 인베노 마사미치 忌部正通 생몰년 불명. 무로마치(室町)시대의 신도가(神道家)이다. 진기관인(神祇官人) 인베(忌部)씨의 일족인데, 상세한 경력은 불명. 죠지 6년(貞治,1367)에 자서(自序)를 쓴 『神代巻口訣』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후세의 가탁(仮託)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이 책은 『日本書紀』 신대기 상하 2권의 주석서(注釈書)인데, 그 내용은 이세신도(伊勢神道)와 『神皇正統記』의 교설에 덧붙여 당시 유행한 송학의 영향을 받아 ‘공명정대함(清明・正直)’을 중요시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 설은 후계자도 없고 오랫동안 언급되지는...
5 인베노 히로나리 斎部広成 생몰년 불명. 헤이안(平安)시대 초기의 관료이다. 다이도 3년(大同,808) 11월 17일 기록에 종오위하(従五位下)로 서위했다는 것 이외에 기록은 없다. 인베노는 엔레키 22년(延暦,803) 인베(忌部)로부터 개성(改姓)을 인정받았다. 인베(忌部)씨는 원래 나카토미(中臣)씨와 함께 궁정제사를 담당하는 씨족이었는데, 동족인 후지와라(藤原)씨의 권위를 배경으로 나카토미씨의 세력이 강해짐에 따라 몰락되었다. 인베씨와 나카토미씨 사이의 관직 장악을 둘러싼 싸움은 다이도 원년경에 정점을 이루었는데, 조정은 이것을 중재...
6 인베신도 忌部神道 신도 유파의 하나. 인베(忌部)씨가 전한 것으로 인베 마사미치(忌部正通,생몰연도미상) 를 주창자로 삼는 것이 통설이다. 인베씨는 고대의 씨족 중에서 나카토미(中臣)씨와 함께 조정의 제사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 조상은 아마노후토다마노 미코토(天太玉命)라 불린다. 그러나 그 후 서서히 나카토미씨로 인해 인베씨는 조정의 제사 직무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인베노 히로나리(斎部広成)의 『古語拾遺』는 나카토미씨의 인베씨 배척에 대한 사정을 고소한 서적이다. 인베(忌部)씨에서 인베(斎部)씨로 글자를 고친 것은 엔랴쿠 22년 (延暦...
7 일본성도교단 日本聖道教団 신도계신종교이다. 이와사키 쇼오(岩崎照皇,1934~)가 교조이다. 쇼오는 쇼와 26년(昭和,1951), 황달로 혼수상태가 계속되는데 이 때 영계체험을 하고, 그 후에도 순간이동이나 천해(天災)의 예지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36년, 27살 때 하룻밤사이에 백발이 되고 귀도 안 들리게 되었다. 39년, 하치다이류오스이신(八大龍天水神)과의 교신이 가능하게 되어, 미야자키현(宮崎県) 다카치호(高千穂)의 8대 궁의 호코라(祠)에서 75일간 은둔하고 4월 27일, 우주의 법칙을 깨닫는다(교단에서는 이 날을 ‘가미타치...
8 일본신궁본청 日本神宮本庁 교파신도적인 성격을 가진 교단이다. 나카지마 슈코(中島秀晃,1902~88)가 교조이다. 슈코는 역학, 음양오행설 등에 관심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계속했었는데, 신리교(神理教)의 교사가 되어 쇼와 10년(昭和,1935) 홋카이도(北海道) 가사이군(河西郡)에 신리교소속의 포교소를 설립했다. 15년 종교단체법에 의한 종교결사로서 신고를 했다. 그 후 슈코는 신관(神職)의 자격을 따고, 쇼와 17년부터 가사이군 메무로쵸(芽室町)의 여러 신사에서 겸직으로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신리교의 포교소는 확대되어...
9 정장・예장・상장 正装・礼装・常装 신관(神職)의 복장. 현재는 정장은 대제(大祭), 예장은 중제(中祭), 상장은 소제(小祭) 때에 입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신관이 남성일 경우와 여성일 경우에 따라 장속(装束)은 달라진다. 남성 신관의 정장은 ‘이칸(衣冠)’이라고 해서 관을 쓰고 호(袍)를 입고 히오기(檜扇)를 가진다. 예장은 ‘사이후쿠(斎服)’라고 하여 동일하게 관을 쓰고 호(袍)를 입지만, 정장의 관, 호와는 다르며, 또 히오기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상장은 ‘가리기누(狩衣)’ 또는 ‘죠에(浄衣)’이며, 에보시(烏帽子)를 쓰고 가리기누 또는 죠에를 입...
10 젠린교 善隣教 신도계의 신종교이다. 교조인 리키히사 타츠사이(力久辰斎,1906~77)는 신도짓코교(神道実行教)의 지방교회장을 맡고 있었던 영능자인 아버지 리키히사 타츠사부로(力久辰三郎)가 사망한 후, 세상의 고뇌하는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20년간의 수행을 맹세한다. 일본 각지 및 조선에서 독자적인 수행을 계속하여 20년째 되던 때 독학으로 공부한 의학으로 ‘신련대사(新陳代謝)’의 깨달음을 얻고, 다음 해 쇼와 22년(昭和,1947)에 천지공도선린회(天地公道善隣会)를 열어, 정신수양도장(스오엔瑞鳳園)을 설립했다. 23년...
11 조쿠사이샤 勅祭社 칙사(勅使)가 찾아뵙고 제사를 집행하는 신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식으로는 조쿠시산코(勅使参向)의 신사라고 한다. 초쿠사이(勅祭)를 맡은 신사는 옛부터 있고, 22사(社) 등은 그 대표이지만 근대부터의 정식적인 조쿠사이샤는 메이지 원년(1868) 10월에 조쿠사이의 신사로 결정된 히카와(氷川)신사이다. 이 외에도 메이지초기에는 구(旧)22사를 중심으로 한 간페이샤(官幣社)나 준쵸쿠사이샤로 불렸던 히에(日枝)신사 등 이른바 도쿄쥬니샤(東京十二社)도 조쿠사이샤로 볼 수 있지만, 현재의 이른바 조쿠사이샤와는 관계가...
12 종교법인 뱍코신코카이 宗教法人白光真宏会 오모토(大本)와 세이쵸노이에(生長の家)계통에 소속된 신종교. 창시자는 고이 마사히사(五井昌久,1916~80)이다. 오모토의 특징 중 하나인 만교동근(万教同根)사상, 세계평화주의를 강조한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카이큐세이교(世界救世教)와 세이쵸노이에 교조의 저서 등을 읽고, 독자적으로 병고치기를 하고 있던 고이는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에게 사상적인 감동을 받고 세이쵸노이에에 입신, 지방강사가 된다. 지도리회(千鳥会)라는 심령실험회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
13 종교법인 시코가쿠엔 宗教法人紫光学苑 신도적인 색채가 강한 신종교 교단. 가와카미 세이잔(川上盛山,1908~51)을 교조로 한다. 세이잔은 가고시마현(鹿児島県) 오시마군(大島郡) 도쿠노시마쵸(徳之島町)에서 태어났다. 효고현(兵庫県)에서 순사부장을 하고 있었는데 병에 걸려 직장을 옮긴다. 쇼와 20년(昭和,1945) 종전의 날, 이사간 히메지시(姫路市)에서 영몽을 꾸었는데, ‘타내려가는 지구를 원래의 위치로 돌려라’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음 해 세이잔의 처형, 이어서 세이잔의 차남인 테루히코(照彦,1936~)에게 신령이 내렸다. 이 신령은 이무...
14 쥬신회 丶心会 점이나 성명감정을 활동・교리의 중심으로 하는 교단이다. 초등학교와 신문사에 근무하고, 독자적인 속기술을 만들었던 구마자키 켄오(熊崎健翁,1881~1961)가 역학, 추명학(推名学), 성명학, 관상학을 연구하고, 쇼와 2년(昭和,1927)에 성명 존중사상에 의한 오성각(五聖閣)이라는 성명감정소를 설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켄오는 전국 신봉자의 요청에 따라 6년에 쥬신도(丶心道)를 확립한다. 오성각에서는 그때까지의 운명학에 관한 학문이나, 심철학(心哲学)을 배우는 강학국(講学局), 숙명타파, 개운지도 성명감정...
15 쥬카신도 儒家神道 유학자들에 의한 신도설이다. 신유일치(神儒一致) 또는 신유습합설(神儒習合説)이라고 할 수 있다. 근세 초기에 유교가 융성하고, 그 때까지의 신불(神仏)습합설의 정체(停滞)로 인해 유교가 신도에 접근하여 불교를 배척했다. 말하자면 유교를 모방하여 해석한 신도설이다. 당시 많은 유학자가 신도를 즐겨 설명했다. 그 예로 야마가 소코(山鹿素行), 나카에 토쥬(中江藤樹), 구마자와 반잔(熊沢蕃山), 가이하라 에키켄(貝原益軒), 미와 싯사이(三輪執斎) 등이 있고, 미토(水戸)학파의 학자들도 각자의 입장에서 신도를 설명하였다. 다...
16 쥬하치신도 十八神道 요시다 카네토모(吉田兼倶)가 제창한 요시다신도의 원리로, 그의 주된 저서 『唯一神道名法要集』에 설명되어 있다. 카네토모는 신도를 체(体,三元)・용(用,三妙)・상(相,三行)으로 나누고, 상(相)의 삼행은 하늘의 오행(五行)・땅의 오행・사람의 오행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하늘의 오행은 수화목금토의 원기신(元気神)으로 하늘의 신광(神光)이고, 변해서 오성(五星)・오색(五色)・오방(五方)・오시(五時)・오계(五季)・오간(五干)이 된다. 거기에 원기원만(元気円満)신도가 더해져서 하늘의 육신도(六...
17 지노와 茅輪 6월의 마지막 날 혹은 한달 늦은 7월의 마지막 날의 하라에(祓,나고시하라에夏越祓), 미나즈키하라에(水無月祓) 때 산도에 세워진 지가야(茅)로 만든 큰 원. 스가누키(菅抜,菅貫)라고도 한다. 참배자가 이것을 통과하여 죄나 부정, 재역(災疫)을 쫓는다. 『公事根源』에는 원을 통과할 때에 ‘6월에 여름을 나기위해 하라에를 하는 사람은 천년의 목숨이 더욱 더 길어진다고한다’라는 노래를 외운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노와의 기능에 대해서는 『備後国風土記』의 한 부분에 소민장래(蘇民将来)의 설화에 작은 지노와를 허리에 차서 역병을 피...
18 지에이도 慈永堂 세카이큐세이교계(世界救世教系)교단의 하나이다. 가츠누마 히사코(勝沼久子,1927~)가 교조이다. 농가의 며느리였던 히사코는 심장병이 완쾌된 것을 계기로 쇼와 44년(昭和,1969) 세카이큐세이교에 입신하였다. 그 후 치병능력을 높여서 신봉자가 생겼지만 그것 때문에 중상모략을 당하기도 했다. 49년 1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가 강림한 이후 그 수호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는 천룡신(天龍神)의 부부가 여의주를 가슴에 넣어 주었다. 7월에는 오카다 모키치(岡田茂吉)의 영에 이끌려 신계로 가서...
19 지운 慈雲 1718~1804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진언종(真言宗) 승려. 지운신도의 창시자이다. 휘(諱)는 온코(飲光). 자(字)가 지운이다. 교호(享保) 3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大祓解』의 저자인 고즈키 야스노리(上月安節)의 아들이다. 13세에 출가하여 그 후 이토 토가이(伊藤東涯)의 문하에서 배웠다. 22세 때 스승인 죠키(貞紀)로부터 료부(両部)신도를 전수 받았다. 계율(정법율)의 부흥에 진력한 것으로 저명하지만, 만년에 가와치국(河内国)의 가츠라기산(葛城山) 고키사(高貴寺)에서 은거한 후부...
20 지카쿠산민주교교단 智覚山民主教教団 기소온타케(木曽御嶽)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교단이다. 메이지(明治) 중기 네하시 우메타로(根橋梅太郎,1868~1922)가 지카쿠코사(知覚講社)를 설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이쇼 10년(大正,1921)에 우메타로가 사망하지만, 온타케산의 세이류(清流)도장에서 같이 수행을 하고 있던 3남인 시게후미(絮文)가 뒤를 이어 계승하였다. 쇼와 4년(昭和,1929)에 온타케대신(御嶽大神)을 봉제주신(奉斉主神)으로 하는 치카쿠산온타케교회를 설립하고, 9년에는 온타케교(御嶽教)에 소속되어 지카쿠산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