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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이카리마루 |
渡辺重石丸 |
1836~1915년. 막부말, 메이지(明治)시대의 신관, 국학자이다. 이름은 시게토(重任), 나중에 이카리마루(重石丸)라 하고, 통칭은 요키치로(与吉郎), 데츠지로(鉄次郎)이며, 호는 도요키(豊城), 오세이인신시(覚栖園隠士), 몬시츠안슈진(捫虱庵主人), 데츠지로(鉄十字)이다. 덴포(天保) 7년 부젠국(豊前国) 나카츠 사쿠라마치(中津桜町, 현재 오이타현大分県 나카츠시中津市)에서 태어났다. 나카츠번 오쿠다이라가(奥平家)의 가신이며, 후키데하마고효(吹出浜古表)신사의 신관인 와타나베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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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라이 유키타다 |
度会行忠 |
1236~1305년. 가마쿠라(鎌倉)시대 후기의 이세신도가이다. 니시카와라 유키츠구(西河原行継)의 자식으로, 조부인 유키요시(行能)에 의해 키워졌다. 겐쵸 3년(建長,1251)에 외궁 네기(禰宜)가 되어 에이닌 5년(永仁,1297)에 임시직으로 이치노네기(一禰宜)에 보직했다는 것은 『皇字沙汰文』에서 볼 수 있다. 네기직에 53년간 종사했고, 신궁상전(神宮相伝)의 고법(古法)을 기반으로 사상 신념을 깊이 굳혔다. 대표적 저술에 『伊勢二所太神宮神名秘書』, 『古老口実伝』, 『心御柱記』이 있다. 『神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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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라이 이에유키 |
渡会家行 |
1256~1356년. 남북조시대의 이세신도가이다. 외궁 네기(禰宜)인 무라마츠 아리유기(村松有行)의 장남으로 고겐(康元) 원년에 태어났다. 유키이에(行家)라고도 했다. 도쿠지 원년(徳治,1306) 네기에 임명되었고, 86세에 이치네기(一禰宜)・종삼위(従三位)에 승격했다. 신궁의 전고(典故)를 통한 신도에도 조예가 깊었고, 주된 편저에 『神道簡要』1권, 『類聚神祇本源』15권, 『神祇秘鈔』1권, 『瑚璉集』5권이 있다. 『神祇本源』는 겐오 2년(元応,1320)에 찬록했고, 진기(神祇)의 근간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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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라이 츠네요시 |
度会常昌 |
1263~1339년. 가마쿠라(鎌倉)시대 말기부터 남북조(南北朝)시대에 걸친 이세(伊勢)신도가이다. 고쵸(弘長) 3년 외궁장관인 히가키 사다나오(檜垣貞尚)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츠네요시(常良)이다. 30세에 네기(禰宜)로 추거되어, 에이닌 4년(永仁,1296) 고노지사타(皇字沙汰)에 상신서를 쓰고, 무라마츠 이에유키(村松家行,와타라이 이에유키度会家行를 일컫는다. 무라마츠에서 살았기 때문에 칭해진 것)가 교토에 오도록 도왔다. 쇼와 5년(昭和,1316)에 이치네기(一禰宜)로 승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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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시로 |
依代 |
마츠리에서 신령이 강림할 때, 혹은 신령이 빙의될 때 등, 신령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 수목, 암석 등의 자연물인 경우와 기둥, 노보리(幟), 고헤이(御幣), 꽃 등의 호세츠(舗設,마츠리에 필요한 제구 모두를 제사장에 준비하는 것)인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것과는 별도로, 인간이 요리시로가 되는 경우는 ‘요리마시’라고 칭한다. 들개, 늑대, 원숭이, 새 등은 신령의 의사를 행사하는 것에서 ‘츠카와시메’, ‘오사키가미’라고 하기도 한다. 요리시로의 오래된 형태로는 히모로기(神籬)나 이와사카(磐境), 도리모노(採物)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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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카네미 |
吉田兼見 |
1535~1610년.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의 요시다(吉田)신도가의 당주이다. 덴분(天文) 4년, 요시다 카네미기(吉田兼右)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슌(梵舜)은 제자에 해당된다. 처음 이름은 카네야스(兼和), 나중에 카네미(兼見)로 개명했다. 지쥬(侍従), 진기다이후(神祇大副), 사에몬노카미(左衛門督)를 역임, 종이위(従二位)에 올랐다.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나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접근하여 요시다신도의 세력확대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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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카네미기 |
吉田兼右 |
1516~1573년. 전국기(戦国期)의 요시다신도(吉田神道) 집안의 당주이다. 에이쇼(永正) 13년 4월 20일, 기요하라 노부카타(清原宣賢,요시다 카네토모吉田兼倶의 3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요시다 집안의 당주는 카네미츠(兼満,카네토모의 장남인 카네무네兼到의 아들)였는데, 히라노 카네나가(平野兼永,카네토모의 차남)와의 사이에 도통을 둘러싸고 쟁론이 일어났고, 그 결과 다이에이 5년(大永,1525) 자택에 방화하고 번을 떠났다. 그로 인해 불과 10세인 카네미기가 요시다 집안을 계승하게 되었다.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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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카네토모 |
吉田兼倶 |
1435~1511년. 무로마치(室町) 후기의 사관(祠官). 요시다(吉田)신도의 창시자이다. 진기곤노다이후(神祇権大副)인 카네나(兼名)의 아들이다. 처음 이름은 카네토시(兼敏), 나중에 카네토모(兼倶)로 개명했다. 에이쿄(永享) 7년에 태어나, 지쥬(侍従), 진기곤노다이후, 단죠다이히츠(弾正大弼)를 역임했다. 카네토모는 부조전래(父祖伝来)의 신도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또 그것을 발전시켜 독작적인 신도설을 수립했다. 그것이 겐본소겐(元本宗源)신도(유이이츠唯一신도 또는 요시다신도)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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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신도 |
吉田神道 |
무로마치(室町) 후기 이후, 근세를 통해서 진기계(神祇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신도설이며 유파이다. 요시다 카네토모(吉田兼倶,1435~1511)에 의해 창시되었다. 카네토모 자신은 ‘유이이치(唯一)신도’, ‘소겐(宗源)신도’, ‘겐폰소겐(元本宗源)신도’ 등으로 불렀지만, 현재는 ‘요시다신도’, ‘우라베(卜部)신도’라는 호칭이 일반적이다. 요시다가(吉田家)는 원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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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라 마사모치 |
芳村正秉 |
1839~1915년. 신슈교(神習教)의 교조이다. 덴포(天保) 10년 9월19일, 미마사카(美作,현재 오카야마현岡山県)의 무사 요시무라 다이지(芳村泰治)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마사모치는 난법(蘭法)의 의학을 배웠고, 즈야마번(津山藩)의 어전의(後典医)에 종사했다. 마사모치는 어릴적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경신의 마음도 깊었다고 한다. 10대에 유학, 국학, 한자, 의학을 배웠다. 19세 때 교토(京都)에 가서 고학, 양명학 등도 배웠고, 많은 학자와 교류를 가졌다. 교토에 있을 때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지사들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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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미 요시카즈 |
吉見幸和 |
1673~1761년.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신도가(神道家)이다. 이름은 「고와」, 「유키카즈」라고도 한다. 자는 시레이(子礼)이고, 통칭은 사다노스케(定之助), 가츠야(勝弥) 등이며, 호는 교켄(恭軒), 후스이오(風水翁) 등이다. 엔포(延宝) 원년 9월 15일, 요시미 츠네유키(吉見恒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아버지, 대대로 나고야의 도쇼궁(東照宮)의 신관이었고, 겐로쿠 원년(元禄,1688)에 가독을 이었다. 나중에 형부성(刑部省)의 다이후(大副)에 보직되어, 정사위하좌경대부(正四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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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카와 코레타리 |
吉川惟足 |
1616~1694년. 성은 깃카와(橘川), 이름은 고레타루라고도 한다. 에도(江戸)시대 전기의 신도가이다. 요시카와신도의 시조이다. 이름은 모토나리(元成), 코레타리, 요리토키(従時), 통칭은 지요마츠마루(千代松丸), 고로사에몬(五郎左衛門)이고, 호는 아레미도(視吾堂), 소인시(相隠士) 등이다. 덴와(天和) 2년 에도에서 태어났다. 니혼바시(日本橋) 장삿집의 양자가 되어 가업을 잇지만, 번성하지 못하고 가마쿠라(鎌倉)에 은거했다. 그 후 학문에 본격적으로 몰두하여, 주로 고전이나 와카(和歌)를 즐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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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카와신도 |
吉川神道 |
에도(江戸)시대 전기의 신도가 요시카와 코레타리(吉川惟足,1616~94)가 창설한 신도설. 코레타리는 원래 에도 니혼바시(日本橋)의 상인이었는데, 당시 요시다가의 실력자 오기와라 카네요리(荻原兼従,1590~1660) 밑에서 신도와 와카(和歌)를 배우고 점점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 후 요시다가의 호주가 어린데다가 카네요리의 제의를 받아 요시다신도의 도통(道統)을 계승했다. 그 때의 계약에는 어린 호주가 성장한 후에 요시다신도의 도계를 그에게 전수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실현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코레타리는 막부(幕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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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덴신도 |
烏伝神道 |
가모노 노리키요(賀茂規清,우메츠지노 노리키요梅辻規清,1798~1861)가 제창한 신도의 교설. 노리키요는 가모와케이카즈치(賀茂別雷)신사 집안 출신이고, 전래되어온 신전(神伝)을 기반으로 가르침을 세웠다고 한다. 가모씨의 조상인 야타카라스(八咫烏)로부터 전해진 신도라는 의미로 ‘우덴신도’라고 칭한다. 그 교의는 하늘에서 사용되는 ‘가’, 즉 양(陽)과 땅에서 사용되는 ‘미’, 즉 음(陰)의 결합에 의해 자연과 인륜에 공통되는 모든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것이 ‘가미의 도(道)’, 즉 ‘신도(神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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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베 카네카타 |
卜部兼方 |
생몰년 불명. 가마쿠라(鎌倉)시대 중기의 학자이다. 가이켄(懐賢)이라고도 한다. 우라베씨 히라노류(平野流) 진기타이후(神祇大副) 카나후미(兼文)의 아들이다. 우라베씨는 원래 점술을 담당하는 집안이었지만, 헤이안(平安) 후기의 카네노부(兼延)이후 진기타이후를 세습하고, 고증과 고전(古典) 연구를 가학(家学)으로 했다. 우라베씨는 요시다(吉田)계통과 히라노계통의 두 흐름이 있었는데, 히라노계통은 카네카타의 할아버지인 카네요리(兼頼), 아버지인 카네후미 때부터 『니혼쇼기(日本書紀)』 등 고전류의 필사사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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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타 나가타미 |
浦田長民 |
1840~1893년. 메이지시대의 신도가이다. 덴포(天保) 11년 3월 1일, 이세국(伊勢国) 와타라이군(度会郡) 우지(宇治)에서 태어났다. 자는 고쿠후(穀夫), 호는 가이테이(改亭)이다. 안세이 4년(安政,1857)에 가업인 내궁곤네기(内宮権禰宜), 기요사카토코노우친도(清酒作内人)에 종사했다. 우지년기회합(宇治年寄会合)에도 참여했다. 유신 전야, 산조 타네토미(三条実美)에게 발탁되어 국사(国事)에 분주했는데 신궁수위(神宮守衛)의 칙서를 둘러싸고 감옥에 갇혔다. 메이지 원년(1868)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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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카즈토시 |
上田万年 |
1867~1937년. 메이지(明治)시대부터 쇼와(昭和)시대에 걸친 국어학자. 게이오(慶応) 3년 정월, 에도(江戸)의 나고야번(名古屋藩) 시모야시키(下屋敷)에서 태어났다. 메이지 21년(1888) 제국대학(현 도쿄대학) 문과대학 화문학과(和文学科, 일문학과)를 졸업, 대학원에서 B・H・첸바렌에게 시사받고 언어학으로 전환하여, 23년부터 27년까지 독일, 프랑스로 유학갔다. 귀국 후는 제국대학 교수로서 유럽 언어학을 소개하고, 국학 등으로 근세의 일본어연구를 재구축했다. 32년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쇼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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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마츠 아리노부 |
梅松有信 |
1758~1813년. 에도(江戸)시대 후기의 국학자이다. 통칭 쥬베에(忠兵衛)이다. 호레키(宝暦)년 오와리나고야(尾張名古屋)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판목가게를 하는 오와리번사(尾張藩士)였는데 나중에 봉록을 잃고 로닌(浪人)이 되었다. 아리노부도 판목가게를 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古事記伝』의 간행에 관여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요코이 치아키(横井千秋)의 소개로 노리나가와 서로 알게 되었는데, 간세이 원년(寛政,1789)에 노리나가가 나고야에 방문했을 때 입문했다. 이후, 나고야 지역의 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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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덴신도 |
雲伝神道 |
에도(江戸)시대 진언종(真言宗) 승려였던 지운손쟈(慈雲尊者) 온코(飲光,1718~1804)가 주창한 신도이다. 그의 주거지가 가츠라기산(葛城山)에 있어서 가츠라기(葛城)신도라고도 한다. 지운의 학문은 밀교(密教), 선(禅)뿐만 아니라 실담어(悉曇語)와 유학・신도에까지 미쳤다. 특히 정법율(正法律)을 주장해서 계율을 부흥했고, 『梵学津梁』 1천권을 저술하여 역대의 실담학(悉曇学,범어・범어글자 등의 연구)의 집대성을 이루는 등, 당대 일류의 학자였다. 그는 당시의 유학자 및 신도가들의 불교비판에 대항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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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메이트(코스모메이트) |
ワールドメイト(コスモメイト) |
신도계신종교이다. 후카미 세이잔(深見青山,1951~)이 교조이다. 후카미의 본명은 한다 하루히사(半田晴久)로 효고현(兵庫県) 니시미야시(西宮市)에서 태어나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했다. 10대부터 세카이큐세이교(世界救世教), 그 후 오모토(大本)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서 신도에 심취하게 되는데, 쇼와 60년(昭和,1985)경에 본격적으로 종교운동을 개시했다. 53년에 도쿄의 니시오기쿠보(西荻窪)에 설립한 가쿠슈쥬쿠(学習塾) ‘미스즈가쿠엔(三十鈴学苑)’을 기반으로 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다치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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